로스트 인 썸머! 운명의 파라다이스 · 챕터 8
예정된 미래

아일라
이건…!
아일라가 구덩이 속에 들어있던 수첩을 꺼내 펼쳐 보았다.
아일라
…이 수첩은, 항해 일지 같아요.
항해 일지라면…
아일라
…!
주인 모를 항해 일지를 펼쳐보던 아일라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채 멈췄다.
스마일
아일라, 무슨 일이 있어?
아일라
…그게…
…
…이 글…
저희 어머님의… 필체 같아요…
해적왕은 바다를 지배해야 한다는 운명 아래 평생을 떠돌았지만, 별의 구원자를 만난 뒤 그의 영향으로 작은 섬에 정착해 해저도시 플로라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정성껏 빚어낸 플로라를 깊이 사랑한 나머지, 이곳만큼은 티끌 하나의 불행조차 없는 낙원으로 남기를 바라며…
플로라에 남아있던 모든 불행을 한 장의 작은 양피지 안에 봉인해 두었다.
그러면서도 훗날 누군가의 실수로 양피지의 봉인이 풀려 저주의 희생자가 나타날 것을 대비해…
그 양피지에 저주를 풀 수 있는, 자신의 축복이 담긴 보물이 잠든 장소 또한 함께 기록해 두었다.
그 이후 해적왕은 자신의 부하였던 플로렌에게 양피지를 맡기며, 이 사실이 절대로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으나...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진실은 점차 왜곡되어, 끝내 그 양피지가 해적왕이 남긴 보물의 위치가 적힌 지도라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나간 것이었다.
이곳에 도달해서야 소문의 모든 진상을 알게 된 우리는 커다란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 사실에 따르면 해적왕의 보물을 찾기만 하면, 딸아이의 저주를 분명히 풀 수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거친 해류와 수많은 암초에 배가 반파된 와중에도…
이곳에 도착한 우리는 딸아이의 저주를 풀어줄 해적왕의 보물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희망만을 붙든 채, 정신없이 이 섬을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달 문양이 새겨진 돌덩이를 찾아내었고…
그렇게, 해적왕의 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일라
어머님, 아버님…!
항해 일지의 페이지 하나를 전부 읽은 아일라가 구덩이를 보았다.
그곳에는 항해 일지와 함께 묻혀 있던 주머니가 남아 있었다.
스마일
아일라, 여기 있음…!
스마일이 얼른 그 주머니를 주워 아일라에게 건넸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받아든 아일라가,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주머니 안을 열어보았다.
아일라
…?
…이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아일라가, 손을 넣어 주머니 안에 있던 물건을 들어올렸다.
루나
은화…?
아일라
…네, 온통 은화뿐이에요.
스마일
양피지의 저주를 풀어줄 해적왕의 보물이 이런 금은보화 형태로 보관되어 있다는 점은 의아.
하지만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만졌을 때, 저주가 풀어졌을 가능성이 있음…!
아일라, 만졌을 때 저주가 풀리는 반응은?
아일라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루나
아일라, 혹시 그 항해 일지에 뭐 더 적혀 있는 건 없어? 이 보물들을 가지고 어떻게 저주를 풀어야 한다거나!
아일라
그게… 아, 여기 한 페이지가 더 있었어요…!
뒤늦게 항해 일지의 마지막 페이지를 발견한 아일라가, 서둘러 그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돌덩이 아래에 잠들어 있던 해적왕의 보물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어떤 축복이나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은화.
상당한 양이었으니, 이 정도라면 보물을 찾은 이의 운명을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단숨에 그를 부호의 자리에 올려줄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한 금은보화는… 우리에게 있어, 그저 또 다른 이름의 절망일뿐이었다.
타고 왔던 배는 반파되어 이 섬을 빠져나갈 방법은 요원하고…
그토록 찾아 헤맸던, 딸아이의 저주를 풀어줄 거라 믿었던 해적왕의 보물 또한 단순한 금은보화에 불과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보물을 처음 잠들어 있던 구덩이 속에 다시 묻는다.
마지막 항해일지와 함께.
불쌍한 우리의 딸아이―
아일라가 이 보물을 찾으려고 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우리는 이 무덤섬을 빠져나갈 방법을… 빨리 찾지 않으면…
아일라
…어, 어머님… 아버님…
…
아아…
항해일지를 덮은 아일라가 탄식하며 주저앉았다.
아일라…
주저앉은 아일라의 앞에는 항해 일지와 함께 묻혀 있던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딸의 저주를 풀기 위해 보물을 찾아 헤매던 그녀의 부모님이 절망이라고 불렀던, 주머니였다.
주저앉은 아일라가,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를 다시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믿기 힘들다는 듯, 텅 빈 눈이었다.
아일라
…
…그렇다면 이게… 해적왕의 보물… 이라는 거군요.
아무런, 축복도 마력도 없는, 단순한 금은보화…
…하하… 하…
…
고작, 이런 게…
고작…! 이런 게, 해적왕의 보물… 이라구요…?
그럼 이딴 은화 더미 때문에, 저희 부모님이…!
루나
…
아일라
저는… 부모님은… 금은보화를 바란 게 아닌데…
이런 게 해적왕이 남긴 보물이라면… 제 저주는…
스마일
아일라…
아일라
…
혼이 빠진 듯 저 먼 풍경을 응시하던 아일라가, 이내 깨달은 듯 크게 뜨인 두 눈에 깊은 후회가 스친다.
아일라
아… 아… 아아…
아아…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아일라가 고통스럽다는 듯 머리를 감쌌다.
아일라
…저주를 풀어줄 보물이 없다면… 나는 그럼…
아하하… 뭘 위해 노력한 거야, 나는…
아일라는 그대로 허리를 숙인 채 연신 흐느끼다가, 정신을 놓은 듯 헛웃음을 터뜨린다.
갈라지고 빨갛게 부은 손끝에는 그녀를 절망에 빠트린, 찢어져서 절반만 남은 보물 지도가 구겨져서 모래 바닥으로 깊게 처박히고 있었다.
스마일
아, 아일라… 그렇게 절망하지 마…
진짜 보물은 다른 곳에 묻혀 있을 가능성도 있음… 그렇지, 루나?
루나
…
스마일
…루나?
루나
…여기가 운명이라는 보드게임에서 말이 도착하는 마지막 칸이야.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지.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의뢰를 수락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일라
운명…
저는 왜, 보잘 것 없는 제가… 운명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자만했을까요…
애초에 저주를 풀 보물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는데,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착각했어…
이제 더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
풀썩-
스마일
아일라!
엎드려 흐느끼던 아일라의 호흡이 거칠어지더니 허리에 힘이 빠진 채 옆으로 넘어졌다.
넘어진 아일라를 부축해 안아 들자, 소중히 간직해 온 보물지도는 여전히 부르튼 손안에서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었다.
…잠깐 기절한 것 같아.
루나
…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한 표정의 루나는 땅에 떨어진 항해일지와 은화 주머니를 주워서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루나
…
거봐. 이런 게 제일 싫다니까.
스마일
루나…
루나
…역시 바보 같은 생각이었어.
그 말을 끝으로 일지와 은화 주머니를 챙긴 루나는 먼저 등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한동안 아일라를 안고 해변가를 거닐던 우리는, 해가 지기 전 운 좋게 작은 동굴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동굴 안에서 휴식을 취한 아일라는 금방 정신을 차렸지만…
스마일
충분한 수분 섭취가 필요. 아일라, 이 코코넛 워터를 마셔.
아일라
콜록, 콜록…!
스마일
아일라…!
아일라가 허리춤의 약봉지를 꺼내 아무렇게나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그 약을 제외하면, 그녀는 반나절동안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죽은 사람처럼 멍하니 누워만 있을 뿐이었다.
루나
…
텅 빈 눈으로 정면만 보고 있는 아일라의 모습을 보던 루나도, 깊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루나
머리 좀 식히고 올게.
스마일
루나-
…읏.
루나를 붙잡으려던 스마일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스마일은 아일라의 옆에 앉아 동굴밖으로 나가는 루나의 등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스마일
단장.
응?
스마일
나는 루나를 만난 이후로, 저렇게 슬픈 얼굴을 한 루나를 본 적이 없음.
단장은, 있어?
…아니.
스마일
…나는 인간의 감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인간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표정만 보고 루나가 어떤 마음일지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
하지만…
…그래도, 루나가 슬퍼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어.
평소와 같은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스마일의 눈동자에서, 어쩐지 슬픔이 전해지는 것은 왜일까.
스마일
루나가 아픈 건 싫음.
그러니까, 단장이 루나를 구해주면 안 돼?
날 구해줬던 것처럼.
…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굴 밖으로 나온 나는 무작정 앞을 향해 달렸다.
앞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바다였지만…
모래에 발이 빠지는 소리가, 파도 소리를 덮을 만큼, 절박한 달리기였다.
그리고, 다행히도 얼마되지 않아…
루나!
루나
아, 단장…?
홀로 생각에 잠긴 채 바닷가를 걷고 있는 루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루나
왜 그렇게 달려왔어?
…잃어버릴까봐.
루나
하하… 잃어버리다니?
어차피 우린 표류됐잖아. 이 섬 말곤 아무데도 못 가는걸.
이미 결말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구.
루나가 발끝으로 시선을 내린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새하얀 발치로 밀려온 바닷물이, 하얀 포말을 내뿜으며 물러간다.
루나
…그렇게 애써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얼마든지 틀릴 수 있는 거잖아, 한 번쯤은…
일정하게 밀려왔다가 물러가는 물결 소리가 빈 공간을 메운다.
시선을 내리고 있던 루나는 고개를 들어 바다 너머의 수평선을 바라본다.
루나
한번 관측된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
이건 우주의 법칙이자 자연의 순리.
설령 방향이… 그 과정이 조금 어긋났더라도, 결과는 결코 변하질 않아.
그 말을 다시 한번 마음에 담는 듯 눈을 감고 숨을 내쉰 루나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루나
아일라는, 오늘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거야.
그게 우리가 마주해야 할, 그 아이의 결말.
…그럼…
함께 아일라의 저주를 풀어주기로 했던 건…
루나
응. 단장도 봤지?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
안타깝지만, 그게 그 아이의 운명이야.
저주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
…다시 한번 노력해서, 어떻게든 방법을-
루나
아하하. 노력으로 어떻게든 되는 거라면, 운명이란 거창한 타이틀로 불리진 않았을걸?
나도 안 해본 게 아니야, 단장…
하지만 몇 번을 반복해도, 한번 정해진 결말은 바뀌지 않아.
그러니까 단장도 노력으로 될 거란 어중간한 희망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희망은 절망과 맞닿아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루나도 분명…
이번엔 다를 거라고, 기대했잖아.
이번 모험에서 묘하게 오기를 부리던 루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적극적으로 무덤섬을 찾고, 질 수 없다면서 태양보다 밝게 웃음 지었던 루나의 모습을.
루나
…응. 기대했어.
결과를 알면서도 아일라를 응원해주고 싶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함께 어울려주고 말았어.
희망이 더 깊은 절망으로 날 밀어넣을 거란 걸 분명히 알면서도…
바뀌지 않는 미래를 몇 번이나 경험했으면서도…!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게 믿고 있었어.
…
루나의 뒤로 보이는 밤바다가 달빛을 받아 더욱 푸르게 찰랑인다.
루나
단장이 바꿔줬던 그 미래가.
그 기적이.
어쩌면 한 번은 더,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믿어버려서.
위태롭게 맺혔지만 끝내 떨어지지 못한 눈물 대신, 루나는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루나
하지만 봐.
나는… 또 틀렸어.
결국, 꼴사나운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던 거야.
또 다시 속아넘어간 자신의 꼴이 웃기다는 듯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린다.

여태껏 비관적일 수밖에 없었던 루나의 태도는 모두 바뀌지 않는 미래에 대한 회의감.
이번에도 당연히 습관처럼 기대를 버리고 있던 루나는, 운명 따위 개척해 주겠다는 아일라의 태도와 상황들을 보면서…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몇 번이나 경험했던, 반복되는 절망 속에서…
나와 함께 하며 미래가 변하는 경험을 기적이라 느꼈다면.
그리고 그 기적을 통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에 새기게 된 거라면.

내가 바꿔줄게.
루나
…이미 우린 분기점을 지났어, 단장.
이제 와서 단장이 작은 기적을 일으킨다 해도, 이미 결정된 운명은…
흔들림 하나 없는, 담담한 문장이었다.
이미 모든 것을 전부 알고, 겪고, 체념한 사람들 특유의 슬픔만이 남아있을 뿐.
하지만-
…바꿔줄게.
분기점을 지났든, 엔딩으로 가는 루트를 탔든 상관없다.
세계가 멸망하는 결말이건, 천지가 개벽하는 결말이건 관심 없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루나
절대 바뀌지 않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루나의 저 슬픈 미소 하나뿐이라고 해도.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어두컴컴한 밤하늘.
그 밤하늘 아래에 혼자 서 있는 누군가가, 하늘을 향해 빛을 쏘아 올린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어두운 밤 하늘이 다시 별들의 빛으로 빛나게 될 때까지.

루나
…
그리고 지금의 나 역시, 그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반드시 바꿔줄 테니까!
루나
…어떻게?
…
그, 그건 모르겠지만…
루나
응. 그렇지, 아무래도.
루나가 기대한 적 없다는 듯 감흥 없는 얼굴로 하늘에 걸려 있는 달을 바라본다.
루나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운명.
내일도 모레도, 저 달은 그대로겠지.
…아하하. 내일 저 달이 없어질지, 두 개가 뜰지 세 개가 뜰지 모르는 일이라구?
글쎄… 엿보고 온 미래로 더 이상 모르는 일이 아니게 되면…
그런 게 얼마나 바보 같은 기대인지 깨닫게 되는걸.
기대하게 해줄게.
모르는 일로 만들어 줄게.
루나
그러니까, 어떻게.
궁금하지 않다는 듯한 루나의 물음.
나는 그 앞에 서서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가까운 미래를 엿보고 와.
그 미래, 전부 바꿔줄 테니까!
루나
…후후. 단장은, 정말 변하질 않는구나.
속는 셈치고 해줄 순 있겠지만… 결국 절망만 더해질 뿐이야.
그걸로 괜찮아.
확신은 없다.
작은 기적이 쉽게 일어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자리에서 증명해야했다.
눈앞에서 보여줄게.
네가 본 미래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운명을 거스르는 장면을!
루나
…
그렇게까지 해서…
단장은, 뭘 원하는 건데…?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
당장은, 그거면 돼.
루나
…
하하… 단장 때문에, 또 바보 같은 짓에 휘말렸어.
말과는 달리 씁쓸한 얼굴을 한 루나가 눈을 감고 미래를 엿보기 시작한다.
루나
…
예지를 마친 루나가 조용히 눈을 뜬다.
어때?
루나
…
후후… 뭘 기대하는 거야. 내가 보고 온 건, 언제나의 바다라구.
별 다를 것 없는 밤하늘의… 고요한 세상 말이야.
…
자아… 그럼 단장은, 이 풍경을 어떻게 바꿀 거야?
나는 기대감 하나 없는 얼굴을 한 루나를 한번 보고, 숨을 흡 들이켠 후 고고하게 홀로 떠 있는 달을 향해 외쳤다.
일어나라 기적이여-!!
루나
…
…
민망한 외침은 어째서 메아리도 되지 못하는가…
쩌렁쩌렁하게 목청을 높여도 돌아오는 건 이전과 다르지 않은 하늘과 바다였다.
루나
말했잖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그렇게 흥미를 잃은 얼굴로 뒤를 돈다.
루나
그만 돌아가자. 그 아이, 얼마 안 남았어.
슬슬 곁을 지켜주는 게… 마음이 덜 무거울 거야.
돌아가는 루나의 발걸음이 쓸쓸하다.
…
나 또한 민망한 마음에 모래사장에 찍힌 루나의 발자국을 세다가, 게구멍으로 들어가는 꽃게 한 마리를 발견했다.
구멍 속으로 보이는 꽃게가 빛을 피해 더욱 깊게 숨어드는 모습이 초라하다고 생각했을 때.
유난히 주변이 밝아진 것 같은 기시감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
루, 루나!
루나
…왜? 다시 해보려고?
하지만 더는 구미가 안 당기는걸.
하늘을 봐!
얼른!!
다급하게 돌아서는 루나를 잡아세워 급하게 하늘을 보게 만들었을 때는…
루나
왜. 뭐가 있다는-
…!
잠시 숨을 죽인 듯 고요해진 파도와, 낯설게 일그러지는 공기.
그리고-
루나
…이건…
이전보다 훨씬 강하게 내려앉는 달빛에 눈을 크게 뜨면-

두 개의 달이 펼쳐진, 기적 같은 하늘이 루나의 눈동자 속에 펼쳐져 있다.
루나
…다, 달이…
어떻게…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듯 눈을 크게 뜬 루나가 눈을 몇 번이고 비비더니 눈을 감는다.
나 또한 어떻게 해도 믿을 수 없는, 상식이 완전히 무너지는 풍경에, 루나를 따라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언제였는지 기억할 수 없는-
언젠가의 그리운 기억들이 마구잡이로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두 개의 달빛과 그 아래 빛나는 루나의 얼굴.
루나
…
단, 장…
…어때?
이제 나한테 걸어볼 마음이 생겼어?
단편적인 기억의 한 장면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들어오며 이어지는 두통은 익숙했다.
정리되지 않은 기억을 뒤로 하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꾸며 내자, 그런 나를 보고 루나가 크게 숨을 삼킨다.
세상의 멸망이 다가오건 어쨌건.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루나
…
루나에게 희망을 가져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체념해서 짓는 담담한 미소보다, 절망에 무너지더라도 다시 한번 기적을 바라볼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니까.
루나
단장, 나는…
…윽…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던 눈물이 볼을 따라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루나
나는…!
스마일
단장… 루나…!
루나가 무언가 털어놓으려던 그때, 스마일이 다급히 소리치며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루나는 급하게 팔을 들어 떨어지던 눈물을 슥슥 닦아낸다.
루나
무슨 일이야, 스마일?!
스마일
아일라의 상태가… 이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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