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인 썸머! 운명의 파라다이스 · 챕터 11
운명의 끝

완전히 부서져 어떻게 바다 위에 떠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던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는 커다란 구멍이 난 것 빼고는 꽤 괜찮았다.
루나
아무것도 없는 바다 위에 갑자기 나타난 난파선이라니…
아일라
심지어 아무도 없는 텅 빈 배인데 말이죠…
책에선 이런 걸 유령선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스마일
읏… 유령선은 비과학적 해양 미신에 불과…!
이런 건 그저… 달빛이나 파도 반사 때문에 실제보다 기괴하게 보이는 야간 착시가 분명…!
루나
으응~? 요 꼬맹이, 괜히 무서워서 아니라고 부정하는 거 아니고?
스마일
부정…! 그런 게 아님. 나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는 현상들만 이야기하고 싶을 뿐.
언제나처럼 티격거리는 두 사람을 뒤로 하고, 지도를 보는 데 집중하던 아일라가 고개를 들어 난파선의 안을 둘러보았다.
아일라
그런데 정말, 생각보다 음산하네요…
아일라의 말대로, 커다란 구멍 틈으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이 음산한 소리를 만들어내며 대체로 양호한 난파선의 상태마저 기괴하게 보였다.
…보물이 묻혀 있는 곳은, 이쪽이 맞아?
아일라
음… 네, 확실해요…!
이 방향으로 가면, 지금 저희처럼 난파선의 갑판 아래로 들어오게 되고…
지도에 표시된 대로, 이 근처에…
철그럭-
루나
으아아아각-!
놀란 루나가 펄쩍 뛰며 곁에 있던 스마일을 품에 안았다.
스마일
우우… 무거워, 루나…
루나
무슨 일? 무슨 일이야?!
아일라
죄, 죄송해요…! 제가 뭔가 밟아서…
지도를 보며 걷던 아일라가 발바닥을 들자, 갑판에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던 철갑 조각이 보였다.
루나
휴우~ 그런 거였어? 놀랐잖아…!
스마일
…방금 전까지 유령선을 운운하면서 사람을 겁주던 건 루나임.
두 사람 다 그만하고, 얼른 보물을 찾아보자.
…물론, 기이한 바람소리를 내는 이 난파선을 얼른 빠져나가고 싶은 것은, 나 또한 매한가지였다…
루나
후우…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보물이 있을만한 곳은 다 찾아봤는데, 도저히 안 나오네…
아일라
으음… 반쪽짜리 지도로는 정확한 위치를 찾기 힘든 걸까요…
죄송해요, 제가 지도라도 잘 간수했더라면…
스마일
너무 자책하지 마, 아일라.
어차피 해적왕의 보물이 이 근처에 있다는 건 확정적.
다행히 오늘밤은 특수 현상으로 인해 시야가 밝으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루나
그럼 그럼. 어차피 우린 지금 이 섬을 빠져나갈 수도 없잖아?
그러니까 마음 편하게 먹어, 아일라!
아일라
네, 그럼 조금 더 힘내서 보물을 찾아볼게요…!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데에서 오는 우울감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다시 심기일전한 우리는 각자 흩어져서 이곳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해적왕의 보물을 찾아보았다.
스마일
그럼, 난 이쪽을 찾아보겠음. 다들 힘내.
아일라
네, 그럼 저는 아까 찾아봤던 곳을 다시-
철그럭-
또 다시 엄한 곳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까처럼, 지도를 보는 데 열중한 아일라가 난파선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철갑을 밟아 난 소리인 줄 알았다.
…
루나
아아~ 아일라, 또 철갑 같은 걸 밟은 거야?
아까부터 계속 지도만 보고 걸으니까 그렇지.
계속 그렇게 걷다간 넘어질 테니까, 너무 지도에만 집중하지 말고 앞도 잘 보면서 걷-
루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소리가 난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구석진 곳에 놓인 상자를 뒤적이고 있었다.
…루나…
루나
그래 그래, 단장도 가만히 있지 말고 한 마디 해.
그러다 넘어지면 어쩌려-
퉁-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상자를 뒤지던 루나가 별 소득이 없었는지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하려다가, 앞의 장애물에 막혀 반대로 튕겨나갔다.
루나
으응? 이거 뭐야? 여기 뭐가 있는데? 물컹하고 단단한…
???
꾸룩.
루나
으응? 으응? 소리도 나는데? 갑자기 어디서 이런 게 생긴…
???
크와앙!
루나
…
눈치 없이 쿡쿡 찌르자, 거대한 형상이 뒤를 돌아 흉포한 얼굴을 루나에게 보여주었다.
루나
사…
상어가 또?!
상어
크어어어어―!!
상어가 크게 포효하자, 투박한 발소리가 우리 주변을 에워싼다.
수많은 횃불이 둘러싸며 시야를 밝히고-
???
드디어 찾았군.
둘러싼 남자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들이 나와 상어에게로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는다.
해적 A
잘했어 잘했어. 역시 햄버거만 먹이면서 애지중지 기른 보람이 있군.
해적 B
이봐, 매번 농땡이만 피우다가 한 번 잘한 것 가지고 너무 칭찬하는 거 아닌가?
해적 A
이럴 때일수록 칭찬해줘야 다음에 또 잘 할 거 아냐?
상어
꾸룩!
해적단원이 상어에겐 어울리지 않는 햄버거를 공중으로 던져주자, 커다란 상어는 좋다는 듯 익숙하게 받아먹기 시작한다.
…너희가 기르던 상어였구나.
상어를 시켜서 우리 뒤를 밟은 건가?
해적 B
아아, 너희의 항해 경로와 반쪽자리 지도로 무덤섬까지 오는 건 성공했는데 말이야…
그 뒤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혹시나 싶어서 뒤를 밟으라고 시켰던 게 이런 수확이 될 줄이야.
해적 A
크크큭… 그럼 슬슬 숨겨져 있다는 해적왕의 보물을 찾아볼까.
그러니까, 다치기 전에 순순히 그 지도를 내놓는 게 좋을 거다!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상어를 중심으로 해적단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해적 A
자자, 이번에도 네가 활약할 차례라고.
잘하면, 평생 먹고도 남을 햄버거를 보상으로 주마!
상어
크어어!
루나, 스마일!
루나
흥. 마침 잘 됐어. 우리도 남은 지도가 필요했던 참이거든!
스마일
응. 잃어버린 반절짜리 지도를 되찾을 기회…!

해적 A
크윽… 저, 전멸이라니?! 이 풋내기 녀석들이!
스마일
항복을 권유. 혼자서 우리를 이기기는 무리야.
해적 A
히익…! 마, 막아! 막으라고!
상어
끼이잉…!
해적 A
이 자식, 네 덩치는 생각 못하고 또 소라 껍데기 안으로 도망치려는 거냐고?!
홀로 남은 해적단원이 덩치에 비해 택도 없이 작은 소라 껍질 속으로 도망치려는 상어의 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루나
자아 자아-
그럼, 아일라가 갖고 있던 지도를 돌려받아보실까~
해적 A
히이익…!
콰앙-!
그렇게 기절한 해적단을 꽁꽁 묶어둔 우리는, 지도를 되찾아 겨우 하나로 만들 수 있었다.
스마일
아일라, 찾을 수 있을 것 같음?
아일라
네, 여기예요… 문이 열리는 것 같은데…
아, 문을 열면 작은 공간이 있어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벽면의 홈.
홈에 손가락을 넣어 잡아당기자, 간이로 만들어진 한 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스마일
배의 규모에 비해서 상당히 작긴 하지만… 구조를 보니, 조타실이었던 것 같음.
루나
흐음… 그래서, 해적왕의 보물은 대체 어디 있다는 거람?
여기, 작은 상자가 있어.
조타석 위에는 해적 문양이 새겨진 작은 상자가 있었다.
상자를 열자,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색 나침반이 하나 들어 있었다.
루나
어쩌면 이게…
아일라
해적왕의 보물인 걸까요…?
스마일
오래되고 낡은 나침반. 겉보기로는 의미를 추정할 수 없음…
아일라
바늘이 북쪽으로 고정되어 있는데… 혹시, 여기서 북쪽으로 더 들어가야 하는 걸까요?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한 아일라가 상자 속의 나침반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끼긱- 끼기긱-
루나
나, 나침반의 바늘이… 미친듯이 떨리고 있어…!
파앗-
아일라
아앗…!
강한 빛이 터져나와, 아일라의 몸을 감쌌다.
아일라
으윽… 읏…!!
나침반에서 나오던 환한 빛이 서서히 걷히고, 온몸의 긴장이 다 빠진 아일라가 결국 털썩- 주저 앉는다.
스마일
아일라, 괜찮아…?
루나
설마, 어디 아픈 거야?
아일라
…
놀란 우리가 얼른 아일라를 부축해봤지만, 아일라는 놀란 눈을 크게 뜬 채 멍하니 굳어 있었다.
아일라
아니요…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
어쩐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은 기분이…
아일라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양손바닥을 들어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아일라
어쩐지… 너무 가벼운 느낌이 들어요…
분명… 이 느낌은, 어릴 적에 마지막으로…
…!
연신 무언가를 확인하던 아일라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연신 떨어지기 시작했다.
스마일
아일라, 왜… 왜 우는 거임…? 설마 어디 아픈 거야?
아일라
죄송해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몸이… 너무 가벼워서 그래요…
…하, 하하…
후련하다는 듯 시원한 미소로 답한 아일라가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아일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아일라의 손안에 들어 있던 내내 북쪽으로 고정되어 결코 바뀌지 않을 것만 같던 나침반의 바늘끝은…
정확하게, 아일라를 가리키고 있었다.
루나
응? 나침반 아래에 뭔가 있는데?
비어 있는 줄 알았던 상자 안에는, 오래되어 상자 바닥과 같은 색으로 바래 버린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아일라
이건… 쪽지 같아요.
루나에게서 종이를 받아든 아일라가 천천히 종이를 읽어 내려갔다.
나는 운명을 거스르고 만들어낸 플로라가 영원한 지상낙원으로 남기를 바라며…
이곳에 존재하던 모든 추위와 어둠을 양피지 한 장에 봉인했다.
이런 나의 욕심이 그대를 병들게 하였음에도, 지지 않고 이곳까지 도달한 그대에게 나의 축복이 담긴 나침반을 남긴다.
이 나침반은 내가 끝내 운명을 거스르던 날, 이곳에 배를 정박하고 끝없는 방랑을 끝내기 전까지-
평생을 사용했던 나침반이다.
이 나침반은 운명에 지지 않을 때에 반응한다.
그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이 바늘의 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언제나, 당신의 운명이 있을 것이다.
루나
부디 앞으로 당신이 가는 길에, 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나침반과 함께 들어있던 글을 끝까지 읽어내려간 루나가, 종이를 접어 아일라에게 건넸다.
루나
…운명이고 뭐고, 지긋지긋했던 건 이 사람도 똑같았던 모양이야.
안 그래, 아일라?
아일라
…
루나의 물음에도 아일라는 손 안의 나침반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아일라
이 바늘의 끝이 가리키는 곳에, 당신의 운명이 있을 것이라고 했죠…
스마일
응. 그리고 나침반의 바늘 끝은…
…계속해서 아일라를 가리키고 있었다.
루나
정말이네? 아까부터 아일라를 따라다니고 있어.
응. 아일라의 운명은…
아일라에게 달려 있다는 거겠지.
스마일
결국 해적왕이 하고 싶은 말은 우리와 다르지 않아 보임.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
아일라
…!

그제야 나침반에서 눈을 뗀 아일라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이제까지는 미처 신경쓰지 못했지만…
아일라
밤이… 끝나가고 있어요…
지평선 너머로 해가, 뜨고 있었다.

이걸로 끝인가?
나는 손을 털며 해적단들이 타고 왔던 해적선의 갑판 위, 묶인 해적단원들을 둘러보았다.
기절해 있던 해적단원들까지 전부 배에 싣고 나니 어느새 해가 중천이었다.
아일라
네에…! 전부 실었어요, 단장님!
그럼에도 아일라는 여전히, 씩씩하게 살아있다.
해적 A
으으… 그렇게 찾아 헤맸던 해적왕의 보물이… 금은보화도 아니고 비싼 보물도 아니었다고?
정말 고작… 저딴 황금 나침반 하나였단 말이야…?
상어
끼잉…
…뭐, 해적왕이 남긴 보물의 정체를 알게 된 해적단들은 속이 좀 쓰린 모양이지만 말이다.
스마일
그럼 슬슬 출발 준비를 해보겠음.
루나
좋아, 그럼 외쳐볼까!
숨을 흡 들이켠 루나가,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루나
다들 주목! 닻을 올려라!
아일라 & 스마일
올려라…!
올려라!
일말의 주저함도 없을 정도로, 갑판이 쩌렁쩌렁하게 울릴 만큼 큰 목소리였다.
루나
당연하지, 단장. 주저할 리가 없잖아!
내 남은 인생을 전부 걸고 하는, 인생 최대의 도박은, 이제부터 시작인걸.
남은 인생 전부…!
판돈이 너무 큰 거 아니야…?!
루나
후후… 이 정도쯤은 걸어줘야, 단장도 절대 질 수 없지 않겠어?
안 그래, 단장?
뱃머리를 스치는 바닷바람에, 우리는 기분 좋은 웃음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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