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연구 · 챕터 5
탐문 조사

몇 시간 후. 헨리가 아침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지만 세 사람은 탐문 조사를 나가겠다고 하고 사양했다.
그웬
생체 복원 시술이라니? 공허체랑 싸우다 크게 다친 군인들이나 받는 치료잖아?
릴리
비용도 많이 들고 치료 과정도 고통스러운 시술이라고 들었어.
그웬
역시 아이를 학대한 거지?
그리고 그 가정폭력의 흔적을 숨기려는 거지?
릴리
그건 아닐 거야, 사장님.
아동 학대를 숨기려면 그냥 다락방에 가둬두는 게 훨씬 합리적이니까.
게다가 교수님처럼 눈치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프로페서M
훌륭하네요. 비용과 효율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좋았어요.
릴리 양이라면 조교 자리를 기꺼이 내어 드릴 텐데.
릴리
사양할게요.
프로페서M
후후, 아쉬워라.
그웬
자, 잡담은 그만! 지금은 추리 시간이라고!
릴리 말대로 잭 소장이 아동 학대 흔적을 은폐하려는 건 아니라고 쳐.
그러면 왜 레이첼에게 생체 복원 시술을 한 건데?
릴리
으음…
프로페서M
그 전에 묻고 싶군요. 그웬 양. 릴리 양. 두 분.
모르는 척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진짜로 모르시는 건가요.
그웬
아까부터 무슨 말이야? 교수님.
프로페서M
아이의 몸에 생긴 상처들, 바스커빌 가문, 생체 복원 흔적.
무엇보다 여기 오기 전 마주친 타운가드가 받았던 신고.

타운가드
아, 네. 구시가지 외곽에 아무도 살지 않는 황무지가 있는데…
안개 너머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그 울음소리가 마치 사람이 절규하는 소리 같았다고 하네요.

컵을 쥔 릴리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릴리
…인간을 재료로 쓴 바스커빌의 개.
프로페서M
바스커빌 가문의 과거를 그토록 경계하던 릴리 양이라면 바로 떠올리실 줄 알았습니다만…
떠올리기 싫었던 거죠?
릴리
…!
프로페서M
그 아이가 무슨 일을 당했을지.
생체 복원 시술을 받기 전 피부에 어떤 흉터가 있었을지.
그 텅 빈 눈동자에 담긴 광경이 무엇이었을지.
이렇게나 생각할 거리가 많은데 외면하시면 어떡하나요.
안 되죠. 안 돼요. 저렇게나 증거가 많은데 다 흘리시면.
명탐정 H는 이제 없잖아요?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순간, 그웬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그웬
에잇! 뭘 망설여!
릴리! 레이첼이 위험한 거지? 가주의 의문사 조사는 보류다!
레이첼이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부터 알아보자!
릴리
하지만…
프로페서M
심증뿐이잖아요. 그웬 양. 게다가 받은 의뢰를 임의로 중단한다니.
무엇보다 눈앞의 피해자가 아닌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간파해야죠.
사건을 해결하면 피해자도 구할 수 있는 법이잖아요?
그웬
똑똑한 교수님도 모르는 게 있구나.
H의 사건 기록엔 항상 파트너가 있었잖아.
프로페서M
알죠. 늘 아무것도 모르고 무기력하게 휩쓸리며 발목을 잡던.
그리고 마지막 사건 기록에는 명탐정의 곁에 없었던.
릴리
…
그웬
난 그 파트너가 무기력하다고 생각 안 해.
명탐정 H가 추리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건-
그 파트너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니까.
프로페서M
…
릴리
!
그웬
피해자는 사건이 해결된다고 자동으로 구해지는 게 아니야.
항상 그 파트너가 명탐정 대신 발로 뛰며 구해냈다고.
프로페서M
그웬 양이 지향하는 탐정의 일이란 사람을 구하는 것입니까?
그웬
아니. 사람을 구하고 끝이면 의사나 소방수가 되었지!
하지만 의사나 소방수가 레이첼을 구할 수는 없잖아.
난 명탐정이 없어진 세상에서 명탐정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
레이첼 같은 아이를 구하려고 람파디스 수사 컨설팅을 열었다고!
릴리와 프로페서M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 속에서 그웬을 바라보았다.
그웬
어? 둘 다 왜 그래? 내가 뭔가 잘못 말했어?
릴리
…아니야. 좋은 말이야 사장님. 사장님이 여기 있어서 다행이야.
그웬
응?
릴리
교수님. 인간의 악의를 탐구하기 위해 추리 소설을 읽는다고 하셨죠.
교수님은 이 사건에서 바스커빌 가문의 악의를 즐기고 싶으시겠지만…
저희는 현실의 아이를 구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명탐정 H라면 그랬을 테니까요.
교수는 미소 지었다.
프로페서M
그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실 텐데요.
릴리
알아요. 알아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도요.
프로페서M
곤란하네요. 정말 곤란해.
곤란하다는 말과 달리 교수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들떠 있었다.
프로페서M
우선 오해예요. 릴리 양. 그웬 양. 저는 악의를 즐기지 않아요.
제가 인간의 악을 증명한답시고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테러범으로 보이시나요?
그웬과 릴리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웬
교수님은 멀쩡한 사람들을 철도에 묶어 놓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릴리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에게 선로 레버를 쥐여주고 깔깔거리실 분…
프로페서M
후후후. 그런 상황이라면 전 기차 위라는 특등석을 놓치고 싶지 않긴 하네요.
하지만 두 분도 로맨스 소설에서 갈등 장면 좋아하시잖아요?
오랫동안 헌신한 소꿉친구와 새로 생긴 인연.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주인공.
보통 이런 걸 보며 흥미진진함을 느끼시지 않나요?
그웬
그건 전혀 다른 얘기거든!
프로페서M
후후후. 그런가요?
교수는 짤막하게 웃었다.
프로페서M
그웬 양이 결정하셨으니 저도 전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우선 바스커빌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을 정식으로 제안합니다.
정보는 단서를, 단서는 명분을 주니까요.
그웬
좋아. 탐문 조사를 하는 거지?
프로페서M
무작정 발 가는 대로 조사하는 건 비효율적이니 대상을 정하죠.
이 근방에서 바스커빌 가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설은 네 곳입니다.
바스커빌 연구소, 진료소, 보육원, 마지막으로 뒷골목의 암시장.
레이첼이 보육원 출신이라고 했으니 최우선 조사 대상은 보육원입니다.
그웬
역시 교수님! 바로바로 나오잖아!
릴리
그럼, 교수님도 같이 가시나요?
프로페서M
전 진료소로 가보겠습니다.
연구소의 부속 시설이니 잭 스태플턴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겠죠.
바스커빌의 개에 대한 소문의 진상도요.
그웬
병원이 연구소의 부속 시설이면 협조해 줄까?
그 소장의 입김이 닿았을지도 모르잖아?
프로페서M
닿는 정도가 아니라 잭 스태플턴이 원장을 겸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릴리
그럼 시간 낭비 아닌가요? 다 잭 소장의 하수인일 텐데.
프로페서M
의료진은 그렇겠지만 환자는 다르지요.

희망을 품고 보육원에 왔지만 두 사람의 수사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보육원 직원
죄송하지만, 외부인에게 시설 내부를 절대 공개하지 말라는 이사님의 지시가 있어서요.
릴리
그럼 그 이사님을 만나게 해주시겠어요?
보육원 직원
죄송합니다. 이사님은 최근 연구 때문에 바쁘셔서요.
그웬
연구?
릴리
설마 그 이사란 분이 바스커빌 연구소의 관련자인가요?
보육원 직원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웬
맞구나! 잭 스태플턴이지?!
보육원 직원
아무튼 규정상 문제니 이만 나가주십시오.
보육원 직원은 그대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웬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릴리
응… 시설에도 못 들어가게 할 줄이야.
그웬
대놓고 이 보육원에도 뭔가 일어나고 있다고 광고하네. 몰래 들어갈까?
릴리
아이들이 있잖아. 보기 안 좋을 거야.
그웬
역시 그렇지?
그웬이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웬
…밤에 몰래 들어가는 건?
릴리
소용없을 것 같아. 잭 소장의 지시가 왔을 테니 잔뜩 경계 중일 걸.
그웬
창문으로는 뭐가 보여?
릴리
우리가 오니까 커튼으로 가려놓았어. 이래서는… 응?
릴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릴리
어린아이의 손?
그웬과 릴리는 두 사람을 향해 손짓하는 창가의 작은 손을 향해 다가갔다.
레이첼과 또래로 보이는 작은 소녀가 창가에서 몸을 내밀고 있었다.
그웬
응? 꼬마야, 넌 누구니?
소녀
저는 폴린이에요. 레이첼의 친구예요.
소녀는 밝은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소녀
저는요! 레이븐 월에서 왔어요! 마르코 오빠는 모나스티르, 팀은 칼라이드에서 왔고요!
모두 헨리 아저씨가 데려왔어요!
그웬
그래? 헨리 아저씨는 너희들에게 잘 대해주니?
소녀
네! 아저씨가 오실 때마다 선물을 줘요!
선생님들은 무섭지만 아저씨는 모두가 좋아해요!
헨리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소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소녀
헨리 아저씨는 세상에서 제일 친절해요! 책도 읽어주시고요!
요즘은 뜸해졌지만 멋진 부부 손님들이 찾아와서 친구들을 입양해 갈 땐 파티도 열어주셨어요!
그웬
그렇구나… 그 도련님, 겉보기만 자상해 보였던 게 아니라 실제로도 좋은 일을 하고 있었네.
다음 순간 소녀의 목소리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소녀
레이첼도 좋은 엄마 아빠를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릴리
레이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니?
소녀
네. 레이첼은 험상궂은 잭 아저씨가 데려갔거든요.
그리고 레이첼은 완전히 변해버렸어요.
원래 보육원에서 제일 밝고 활기찬 아이였는데.
그웬
(우리가 본 그 모습…)
릴리
(응. 사장님.)
소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들고 있던 헝겊 인형을 릴리와 그웬에게 내밀었다.
소녀
저… 레이첼을 만나면 이 인형을 전해주실 수 있나요?
레이첼이 제 생일 때 만들어준 인형이에요.
그웬
어? 그럼 너한테도 소중한 물건 아니야?
소녀
괜찮아요. 지금은 레이첼에게 더 필요해 보여요.
저는 곧 친절한 엄마랑 새 아빠가 생기거든요.
꼭 편지할 테니까 레이첼에게 힘내라고 전해주세요!
그웬
응. 꼭 전해줄게. 레이첼에게 힘내라고.
네가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꼭 말해줄게.
소녀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골목 쪽으로 사라졌다.
소녀가 떠난 자리, 두 사람은 착잡한 기분으로 손에 들린 우스꽝스러운 인형을 내려다보았다.
어린아이의 솜씨로 기워 만든 서툰 인형이었지만 보고 있으면 미소가 지어진다.
소녀와 레이첼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추억일 것이다.
릴리
…사장님. 슬슬 교수님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야.
그웬
그래 알았어. 가자.
두 사람은 인형을 챙겨 넣은 채, 약속 장소인 카페로 향했다.

한편, NOA 구시가지 외곽에 위치한 바스커빌 의료원.
무료 진료소답게 진료실 앞은 환자들로 붐볐다.
교수는 차분한 태도로 환자들을 살피다 목표를 정했다.
프로페서M
실례합니다. 어르신.
교수는 노인 옆에 자연스럽게 앉으며 말을 걸었다.
노인
외지인인가? 공짜인 거 빼면 아무 장점도 없는 이 병원에 뭐하러 왔소?
노인의 경계심 섞인 태도에도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가듯 말했다.
프로페서M
이 병원은 무료인데다 의료 수준도 높다고 들어서요.
이런 병원을 무료로 운영하다니, 바스커빌은 정말 훌륭한 가문이군요.
노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냥 질문에는 무시로 일관하던 사람도 잘 알지도 못하는 외부인이 내뱉은 헛소리를 정정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변한다.
노인
무슨 소리!
이 병원도 사실 약품 실험을 하려고 만든 거라는 소문이 있어!
노인은 목소리를 낮췄다.
노인
바로 그 바스커빌의 개를 만들고 있다는 거야!
우리 모두 무서워 죽겠어!
프로페서M
후훗, 어르신도 참. 그런 건 괴담일 뿐이잖아요?
교수의 절묘한 도발은 원래라면 외부인에게 털어놓지 않을 이야기를 노인이 털어놓게 만들었다.
노인
이 아가씨가 큰일 날 소리를! 요즘은 좀 잠잠하지만 말이야…
몇 달 전에 분명히 들었어. 그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야.
프로페서M
바스커빌의 개의 울음소리라는 건가요.
노인
내 어린 시절 조부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바스커빌의 개 전설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아…! 거기에 흉흉한 소문이 더 있어!
프로페서M
어떤?
말을 이어가던 노인은 흠칫하며 입을 가렸다.
노인
그러고 보니 내가 너무 떠들었군…
교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프로페서M
역시, 바스커빌의 개 같은 건 다 허구네요.
연구소에 무슨 허구가 있겠어요.
노인
아니라니깐! 바스커빌의 연구소장 있지 않은가!
그 맨날 어린애 하나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프로페서M
그냥 자기 딸을 데리고 다니는 거 아닌가요?
노인
그럴 리가! 그 남자 뒷골목 암시장에 늘 들락거린다고!
연구소에서 수상한 약을 만들고 있다는 거야!

프로페서M
정말인가요?
노인
나 말고도 뒷골목에 사는 사람들 여럿이 봤어. 그들은…
그때 진료실 문이 열렸다.
의사
다음 환자분. 들어오세요.
노인
이런, 내 차례군. 아가씨도 몸 조심해!
나도 공짜만 아니었으면 이런 무서운 곳에 오지 않았어!
프로페서M
유익하고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어르신.
…진심으로요.
노인을 떠나보내고 교수는 수첩에 내용을 적으며 중얼거렸다.
프로페서M
암시장에서 밀거래라. 새벽에 갑자기 외출할 만하네요.
거길 조사하면 알 수 있겠죠.
뭘 숨기고 싶은 건지, 아니면 숨기는 척하며 관심을 끌고 싶은 건지.
스토리 및 일러스트 © Studio B-Side. 비공식 열람용 아카이브입니다 — 문의나 요청은 사이트 소개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