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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R

회색빛 연구 · 챕터 14

바스커빌의 괴수

헨리

……좀도둑?

헨리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프로페서M

그래요. 좀도둑.

애초에 이 연구의 원안, 당신 것이 아니잖아요?

헨리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프로페서M

후후. 그래요?

헨리

교수님.

바스커빌의 연구가 어째서 죄악으로 여겨졌는지 아십니까?

인간을 재료로 사용해서?

천만에.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들에게 부족했던 건 단 하나였어요.

자신들을 비난하는 모두를—

다물게 할 힘이 없었던 겁니다!

프로페서M

지금 힘으로 제 입을 다물게 하겠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헨리

하하….

못할 것 없지.

모두가 비웃던 삼류 마도학자가. 가문의 수치라 손가락질받던 내가!

바스커빌의 그 어떤 잘난 선조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보여주지!

똑똑히 봐라! 바스커빌의 개를 뛰어넘는 마도학의 정점! 바스커빌의 괴수다!

짐승이 풀려났다.

빗소리 사이로 거대한 무언가가 어둠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스토리 일러스트

짐승은 까마득한 높이의 바스커빌 저택을 너무도 간단히 뛰어넘어 옥상에 착지했다.

쿵. 옥상 전체가 흔들렸다. 곧이어 옥상의 충격음은 완전히 묻어버릴 만큼 소름 끼치는 포효가 NOA의 밤 거리로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영혼을 직접 후벼파는 듯한 포효에도 교수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괴수가 착지하며 튀긴 빗물을 옷깃에서 가볍게 털어낸 교수는 한동안 괴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프로페서M

…하아.

헨리

…?

프로페서M

직접 보니 한숨만 더 나오네요.

헨리

뭐라고?

프로페서M

헨리.

당신, 이 연구의 메소드와 프로토콜은 제대로 읽어보기나 한 건가요?

헨리

…무슨 뜻이지?

프로페서M

제대로 읽었다면—

이런 결과물이 나올 리가 없을 텐데.

헨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헨리

…지금 무슨 개소리를—

프로페서M

이상하다 싶었거든요.

암시장에서 사들인 재료도.

연구를 진행한 순서도.

실패작들에게 나타난 특징까지도.

교수는 괴수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프로페서M

아무리 봐도 낯이 익어요.

헨리

……

프로페서M

당신.

어디선가 이 연구의 랩노트(실험 설계도)를 입수했나 보네요.

하지만 입수한 랩노트(실험 설계도)는 미완성이었겠죠?

헨리

……!

프로페서M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왜 결과물이 이 모양인지.

헨리

무슨…!

프로페서M

정말 구역질이 치미는군요.

원안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비어있는 부분을 제멋대로 이어 붙인 설계.

연구의 목적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흉측하게 만드는 걸 발전이라고 착각하는 수준 낮은 발상.

그러니까 당신이 삼류라는 거예요.

헨리

…닥쳐.

닥치라고!

네가 뭘 안다고 씨불이는 거야!

프로페서M

제가 뭘 아냐고요?

교수는 괴수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프로페서M

적어도 이 연구가 무엇을 위해 시작됐는지는 알고 있죠.

이 연구를 처음 설계한 사람이—

저니까요.

헨리

……!

프로페서M

그런데 이건 아니에요.

원안자의 의도도. 연구의 목적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네요.

삼류 마도학자의 열등감으로 채워져 있을 뿐이에요.

헨리

뭐?

프로페서M

이 구역질 나는 기분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군요.

교수는 천천히 헨리를 바라보았다.

프로페서M

이런 걸 걸작이라고 꺼내놓고 떠들고 다니시면 곤란해요.

원안자의 수준까지 의심받게 되잖아요?

그러니 당신도, 저 졸작도

여기서 폐기 처분하겠습니다.

헨리

…하.

하하….

하하하하하!

헨리는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문득 웃음을 멈췄다.

헨리

■발.

원안자가 어쩌고, 의도가 어쩌고….

그딴 게 다 뭔데.

어쩌라고!

마침내 헨리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은 체면마저 사라졌다.

헨리

그래서 폐기하겠다고?

할 수 있겠냐?

헨리는 비웃으며 괴수를 가리켰다.

헨리

너도 알잖아.

저 괴수 안에 들어가 있는 게 누군지.

너희가 그렇게 살리고 싶어 하던—

레이첼이다.

프로페서M

B-132?

헨리

……!

프로페서M

말했잖아요.

그런 건 저한테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스토리 일러스트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괴수를 바라보았다.

프로페서M

관심 없어요.

헨리

…이런 미친 여자가….

헨리의 입가가 뒤틀렸다.

헨리

그래.

그러면 어디 한번 해봐.

갈기갈기 찢긴 뒤에도—

그딴 여유가 나오는지 한번 보자고!!

헨리가 손을 내리쳤다.

괴수의 거대한 팔이 치켜 올라간다.

날카로운 발톱이 빗속에서 번뜩이며 교수의 머리를 겨눈다.

그리고 그대로 내리 꽂히려는—

스토리 일러스트

쾅!!

옥상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웬

헉… 헉…

늦지 않았지?

괴수의 발톱이 교수의 코앞에서 멈췄다.

교수는 고개만 돌려 그웬과 릴리를 바라보았다.

프로페서M

제 기대보다 조금 늦으셨네요.

릴리

아직 제출 기한이 안 지났는데 봐주시죠.

프로페서M

이런 이런.

24시까지라고 해서 23시 59분에 제출하면 미움받아요.

그웬

아직 23시도 아니잖아!

프로페서M

후훗.

교수는 다시 괴수를 바라보았다.

프로페서M

번거로운 절차가 하나 끼어들겠지만

썩 나쁘진 않네요.

교수는 우아한 동작으로 바스커빌의 괴수를 가리켰다.

프로페서M

저걸 쓰러뜨리는 것까지가 과제라는 건, 알고 있겠죠?

그웬과 릴리는 눈앞의 괴수를 올려다보았다.

잠시 입술을 깨문 그웬은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그웬

…레이첼.

지금 구해줄게.

헨리

이런 일이! 어째서!

아니, 아니야! 내 기술은 완벽했다!

레이첼! 그 쓸모없는 것! 역시 쓰레기로는 쓰레기밖에 못 만드는 거야!

난 완벽했…! 크헉!

그웬이 헨리를 걷어찼고 헨리는 옥상 위로 나뒹굴었다.

그웬

쓰레기는 너다! 이 인간 말종 자식아!

헨리

…푸흡.

그웬

뭐가 웃기지?

헨리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나, 그웬 레스트레이드?

착각하지 마. 이건 네 패배다!

레이첼을 구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녔지?

이거 어쩌나? 이미 늦었다.

헨리는 실성한 듯 웃음을 흘리며 그웬을 도발했다.

헨리

저건 바스커빌의 마도학 결정체다!

어떤 명탐정이 와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되돌리고 싶으면 신이라도 불러와 보시지!

그웬

신도, 명탐정도 필요 없어.

사람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웬은 품에서 푸르스름한 앰풀과 주사기를 꺼냈다.

헨리

뭐, 뭐냐 그건.

그웬

잭 소장이 만든 치료제.

레이첼의 변이를 막을 순 없지만…

레이첼에게서 변이가 일어난 부분만 제거할 수 있다고 해.

헨리

말도 안 돼! 가능할 리가 없어! 저건 마도학의 정점이다!

그웬

시끄러워! 그럼 이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한 아이를 구하려고 한 진짜 천재 마도학자의 발명품이다!

그웬은 축 늘어진 괴수에게 다가가 주사제를 놓았다.

비에 젖은 손길이 짐승의 턱을 어루만진다.

그웬

…일어나야지. 레이첼?

세 갈래의 머리 중 가운데 부분의 아래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처음엔 경련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그것은 살갗이 갈라지는 소리로 바뀌었다.

우드득. 쩌적.

털이 떨어져나가고 검은색 액체가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빗물 사이로 수증기가 되어 피어오른다.

릴리

사장님! 괜찮아?

그웬

괜찮아!

갈기로 뒤덮여 있던 표피가 안쪽부터 부스러진다.

그 틈으로, 희끗한 사람의 손끝이 보였다.

그웬은 짐승의 살가죽을 맨손으로 걷어냈다.

그 손을 본 릴리도 그웬 옆에서 가죽과 살점을 뜯어내는 걸 도왔다.

그웬

조금만… 조금만 더…!

가죽은 두꺼웠고 안에 파묻힌 작은 몸은 점점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두 소녀는 땀과 비로 흠뻑 젖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짐승의 사체를 파헤쳤다.

그웬과 릴리의 호흡이 거칠어질 때, 괴수의 가죽 위로 보라색 액체가 쪼르르 떨어졌다.

프로페서M

힘으로만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이럴 때 쓰라고 전문가가 있는 거랍니다.

릴리

…이 냄새는 마력 추출 시약?

프로페서M

주 용도는 사건 사고 현장의 마력 반응을 조사하는 거죠.

원리는 접촉 면적에서 가장 분포도가 높은 마력을 기화시키는 것.

순환이 멈춘 마력 결합을 끊어버리는 효과도 있죠.

가죽이 쩌억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프로페서M

이 정도는 거들어 드릴게요.

그웬과 릴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빗속에서 세 사람은 갈라진 가죽과 살점을 파헤쳤다.

마침내 작은 몸 하나가 미끄러지듯 흘러나왔다.

축 늘어진, 하지만 분명한 사람의 형태였다.

그웬

…레이첼.

그웬은 검은색 액체로 뒤덮인 레이첼의 몸을 끌어안고 얼굴을 닦아냈다.

레이첼의 젖은 몸은 너무도 작고, 가벼웠다.

릴리

사장님. 레이첼은 괜찮아?

그웬

…괜찮은 것 같아. 숨을 쉬고 있어.

릴리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그웬은 레이첼을 조심스레 안고 일어났다.

바로 그 순간 처절한 절규가 옥상에 울려 퍼졌다.

헨리

거짓말이야!!!

헨리가 빨개진 얼굴로 악을 쓰고 있었다.

헨리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가 없다고!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이런 게 가능할 리가!

말도 안 되잖아! 저건 내가 평생을 쏟아부은 걸작인데!

프로페서M

걸작은 무슨. 삼류의 모조품이었는데.

오히려 저 치료제 쪽이 훨씬 걸작에 가깝군요.

역시 잭 스태플턴은 천재라고 불릴 만했어요.

헨리

실패… 했다고…? 내가 또?

프로페서M

사실 알고 있었잖아요?

교수는 헨리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프로페서M

성공한 적은 손꼽고 마도학 인생 대부분을 실패로 보냈으니 알았을 텐데요.

당신이 평생을 바친 것도 진짜 천재는 우습게 찢어 버린다는 것을.

헨리

웃기지 마! 그 약! 분명 내가 만든 걸 거야!

내놔! 내 거야! 그건 내가 만든…!

그웬과 레이첼에게 비틀거리며 다가가는 헨리 앞을 교수가 막아섰다.

괴수의 사체 옆에서 멈춰선 헨리에게 교수가 속삭였다.

프로페서M

헨리.

그 설계도에서 꼬리 부분은 제대로 이해했나요?

헨리

갑자기 무슨 소리야.

프로페서M

후후. 역시 모르고 있었군요.

헨리

……?

슈르륵—

괴수의 꼬리 부분에서 젖은 무언가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그웬

…응?

릴리

사장님, 저거….

괴수의 꼬리 끝에 달린 뱀이 천천히 눈을 떴다.

프로페서M

합성수 본체의 기능이 멈춘 뒤에도—

그 부분은 한동안 독립적으로 유지된답니다.

랩노트(실험 설계도)의 맨 앞장에 적어 뒀는데. 역시 안 읽었죠?

헨리

뭐?

다음 순간 거대한 입이 헨리의 상체를 그대로 집어삼켰다.

그웬

도련님?!

릴리

꺄악!

남자의 처절한 비명은 빗줄기 사이로 울려 퍼지다 이내 끊어졌다.

그웬과 릴리는 얼어붙은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프로페서M

찰스 바스커빌은 어쩌다 죽었는지 볼 필요도 없겠어요.

그웬

교수님! 괜찮아?

프로페서M

저는 괜찮습니다. 그웬 양과 릴리 양은 다친 곳 없나요?

릴리

으응 괜찮아.

헨리의 상체를 삼킨 뱀은 꿈틀거리다가 이내 옥상 위로 쓰러졌다.

가볍게 쿵 하고 울리는 소리 뒤로, 옥상에 부딪히는 빗물 사이로 피가 흐른다.

교수는 말없이 발 아래 흐르는 피를 바라보았다.

스토리 일러스트

전혀 다른 공간이었지만 그때도 이렇게 비가 왔고

바닥에는 피가 빗물을 따라 흐르고 있었고

세상은 숨 막힐 정도로 회색빛이었다.

색을 가졌던 거라고는 아무것도…

그래. 색은...

그웬

교수님 무슨 생각 해?

프로페서M

후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번 건, 이것으로 모두 끝난 모양이네요.

스토리 및 일러스트 © Studio B-Side. 비공식 열람용 아카이브입니다 — 문의나 요청은 사이트 소개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