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는 끝나야한다 · 챕터 6
봉변

아세라
헤에… 너희 세계도 요리할 때 쓰는 도구는 비슷하게 생겼구나.
유미나
용케 남아 있네. 기본적인 것뿐이지만.
힐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재료를 익히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최대한 그럴싸하게 만들어 보려고.
주방에서는 셰프의 판단이 절대적이야.
힐데
이상한 곳에서 의욕이 강한 녀석이었군…
알겠다. 마음대로 해라.
유미나
뭐야, 소대장? 구경만 하려고?
힐데
분업이라고 하도록, 신입.
어떤 메뉴가 좋을까?
오메가
오메가는 햄버그!
아세라
그러고 보니까 계란도 있었어.
상하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유미나
아마 괜찮을 거야. 원래 있던 은신처에서도 이상하게 멀쩡했거든.
햄버그에 달걀 프라이인가…
나쁘지 않은 조합이야.
아세라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하자!
고기 다지기는 미나한테 맡길게.
계란은 오메가가 까 줄래?
유미나
다지기만 하면 되는 거지?
오메가
오오…! 이렇게 하면 돼?
엣. 부서졌다!
유미나
정말 애구나, 너. 살살 잡아야지.
오메가
에헤헤… 그래도 미끈미끈해서 신기해.
아세라
자, 잠깐! 단장!
방금 난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
…아세라는 마늘 쪽을 부탁해.
많이 매우니까 조심하고.
아세라
알겠어, 맡겨 둬!
유미나
여기, 샐러드 통조림도 있어.
빵에 곁들여 먹으면 식사로는 나쁘지 않을 거야.
왜 그래?
유미나
…기분이 좀 이상해서.
상상도 안 해 봤거든.
이면세계에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요리를 한다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즐거우니까 괜찮지 않을까?
유미나
즐거우니까… 라.
…그렇네. 이런 시간은 오랜만이야.
우여곡절 끝에, 식사가 완성되었다.
…아세라의 손을 거친 마늘이 새카매지는 사소한 문제가 있긴 했지만.
어때?
힐데
…나쁘지 않군. 회사 근처의 식당들보다 나아.
유미나
뭐야, 구경만 해 놓고선…
오메가
오메가는 열심히 도와줬는데!
아세라
이 햄버그, 씹을 때마다 정성이 느껴지는 것 같아.
이런 삭막한 곳에서도 제대로 된 요리를 먹을 수 있구나…
매운 걸 참은 보람이 있어, 정말로.
유미나
아세라,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아세라
응? 나한테?
유미나
아까 네가 그랬지. 로자리아를 쓰러뜨리면 이 상황이 해결될지도 모른다고.
…만약, 녀석을 쓰러뜨려도 그대로면 어떡할 거야?
아세라
그대로라고…?
힐데
……
아세라
아하하, 잘 모르겠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유미나
그럼 그냥 되는 대로 던진 말이었어?
아세라
그, 그런 건 아니고.
네 말처럼 로자리아를 쓰러뜨려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지 몰라.
하지만…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생각하긴 어렵잖아.
그러니까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거야.
유미나
…그러다 실패하기라도 하면?
아세라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안 풀렸을 때의 일은 그 때 가서 생각하면 돼.
유미나
태평하게 그럴 시간이 있겠어?
아세라
괜찮아. 우리한테는 단장이 있으니까.
단장이라면 반드시 좋은 방법을 찾아내 줄 거야.
그렇게 신뢰 받고 있었구나…
괜히 어깨가 무거워지는데.
유미나
그래…?
힐데
꽤나 사이가 돈독하군.
하긴, 원래 젊은이들끼리 다니면 가까워지는 법인가?
오메가
맞아. 아세라 언니랑 오빠랑은 엄청 친해.
아세라
그, 그만큼 신뢰하는 동료란 뜻이지!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맞아, 미나한테도 힐데가 있잖아.
유미나
무, 무슨 소리야!
확실히 도움은 몇 번 받았지만…
소대장은 엄청 무뚝뚝한데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라고!
힐데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 준 사람한테 못 하는 말이 없군.
행동이 앞서는 건 오히려 네 쪽 아니었나, 신입?
유미나
아, 아니… 아세라가 먼저 쑥스러운 소릴 하니까 그렇지.
힐데
입사하고 나서 네가 보여 준 모습도 충분히 쑥스러웠다고 생각한다만.
오메가
앗…! 오메가 배가 덜 고파!
아세라
됐다! 그럼 이제 로자리아랑 싸울 수 있는 거지?
힐데
그렇게 서두를 것 없다. 그렇게 금방 수복될 정도는 아니야.
그럼 잠깐 눈 좀 붙일까.
시간도 늦었고.
힐데
…나쁘지 않군. 슬슬 한계였으니까.
오메가
으응, 배부르니까 졸려…
유미나
나도 찬성이야.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지쳤어.
아세라
으음…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가고 싶지만…
휴식도 실전만큼 중요하지.
아세라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힐데
다행히 이 주변에는 공허체들이 없더군.
말이 나온 김에, 잠시 쉬기로 하지.
한숨 자고 일어나면 수복도 끝나 있을 거다.
…그렇게, 쉬는 동안 오메가를 제외한 일행끼리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흐아아암…
모두 불타 버린 세상답게, 일행이 잠들어 있으니 주위가 온통 조용하다.
가만히 있으려니 다시 졸음이 몰려왔다.
그렇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이어지는 졸음 속에서 몸이 가볍게 흔들렸다.
다른 사람이 깨우려는 것 같아서 눈을 떴는데…
공허체A
크오오…!
…가 아니라 공허체잖아!
납치당한 거야, 설마?!
정신을 차려 보니 공허체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대로는 위험해. 수가 꽤 많아.)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을 불러야…)
로자리아
잘했다, 조무래기들.
로자리아…?
공허체B
크오오!
로자리아
그래. 내가 시키는 대로 했으니 이제 가 봐도 좋다.
아, 물론 그 녀석은 놔두고.
흐응… 바깥에서 온 녀석치고는 평범한걸.
문어처럼 생긴 화성인이라도 나타난 줄 알았더니.
뭐, 별난 구석이 있는지는 차차 확인하면 되겠지.
어째서 납치를…?
우릴 없애려던 거 아니었어?
로자리아
없앤다고? 너희를?
그랬으면 번거롭게 움직일 필요도 없지.
그럼 역시 배우인가?!
로자리아
흥, 제안을 거절한 시점에서 그 기회는 이미 날아갔다.
갑자기 아쉬워지기라도 한 거냐, 필멸자?
하긴 후회할 만도 하지. 불세출의 명작으로 데뷔할 기회를 걷어찬 셈이니까.
딱히…?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로자리아
뭐야?! 이게 진짜!
무서운 힘과 별개로, 이 사람의 성격이 갑자기 알기 쉬울 것 같아졌다…
로자리아
…치잇, 필멸자 주제에 건방지긴.
하지만 보아하니 너, 늑대가 아닌데도 힐데와 꽤 잘 지내는 것 같더구나.
…힐데한테 볼일이라도 있어?
로자리아
당연하지.
처음부터 내가 바라던 건 녀석과의 진심을 담은 전투였으니까.
하지만 용사가 마왕에게 도전하려면 구출할 공주님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
그 공주님이…
나라고?!
로자리아
그래. 계속 굴에 틀어박혀 있다가 기어 나왔는데, 또 틀어박히게 놔둘 수는 없지.
그러니 마음 놓고 기다려라, 필멸자.
네 친구들이 불 속으로 뛰어드는 광경을 구경하게 해 주지.
아하하하하!
스토리 및 일러스트 © Studio B-Side. 비공식 열람용 아카이브입니다 — 문의나 요청은 사이트 소개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