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는 끝나야한다 · 챕터 11
잔류독백

유미나
저건…?
아세라
공허체야!
언제 나타났지? 소리도 기척도 없었는데?
오메가
텅 비어 있는 곳에서 슈육, 하고 나타났어!
힐데
그렇다면 소환의 일종이겠군.
네가 불러낸 거냐, 아스모데우스?
로자리아
그래. 나한테는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아까 던졌던 잔불에 간단히 손을 써 뒀지.
설마 방법이라는 게…?
로자리아
여긴 어린 늑대의 미련에 반응해서 갈라져 나온 세계다.
그러니 그 미련을 없애 버리면 그만이지.
유미나
그럼 저게… 나한테서 나왔다는 거야?
유미나의 그림자
유미. 나.
오메가
앗! 말도 할 줄 아나 봐!
평범한 공허체는 아니란 뜻이네.
유미나의 그림자
왜. 죽지 않았지.
다른 사람. 목숨. 을 빚져서.
살아간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유미나
너, 이 자식…!
유미나의 그림자
앞으로. 몇 명이나.
더. 잡아먹어야. 만족할까.
유미나
젠장…! 왜 꿈쩍도 안 하는 거야!
동요하지 마.
유미나
하지만, 저딴 소리를 하는데…!
힐데
단장 말이 맞다, 신입. 머리를 식히도록.
시작은 너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기반이다.
호락호락하게 생각하지 마라.
아세라
무리하지 마, 미나야. 물러서 있어도 돼.
오메가
맞아! 저런 애들은 오메가가 따끔하게 고쳐줄게!
유미나
…아냐. 두 사람 다 괜찮아.
결국에는… 내가 끝내야 할 일이니까.
로자리아
오호라, 이제야 좀 늑대다운 구석이 보이는군.
좋다. 이 몸도 가세해 주지.
로자리아가?
지켜보려던 거 아니었어?
로자리아
흥. 마음이 바뀌었다, 임시 시종.
그렇지. 너도 이 참에 알아 두어라.
나는 할 얘기가 끝났는데도 퇴장할 줄 모르는 벌레는 질색이야.
힐데
…너와 합을 맞추는 날이 오다니, 세상 일은 알다가도 모르겠군.
로자리아
흐응,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봐? 나는 꽤 즐거운데.
유미나의 그림자
유. 미나.
또. 다른 사. 람 목숨으로.
살아남으. 려고 하는 건가.
유미나
…웃기지 마, 괴물.
분명히, 나는 그 때 후회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마지막까지… 아무도 지키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여기 있으면서 알게 됐어.
나한테는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걸.
그러니까…
쓰러지는 건 너야.

유미나의 그림자
유미. 나.
포. 기해. 발버둥쳐도. 나아지. 지 않아.
유미나
닥쳐!
주저앉아 봤자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이딴 데 남겨질 바에야…! 한 발짝 더 내딛겠어!
아세라
저 공허체, 아까보다 훨씬 약해졌어!
지금이라면…! 끝낼 수 있을지도!
미나야, 다음 한 번으로 승부를 내는 거야!
유미나
말 안 해도 알고 있어! 간다!!
유미나의 그림자
아. 니야.
결국. 희생. 만. 늘어갈 뿐.
유미나
하아… 하…
쓰, 쓰려뜨렸나…?
힐데
…그래. 기척이 점점 옅어지는군.
수고했다, 신입.
아세라
방금 들었지, 미나야!
우리가 해냈대! 이제 이 황무지랑 안녕이야!
유미나
하하, 하…
넌 정말 지치지를 않는구나…
오메가
모두들 굉장했어! 그치, 오빠?
나도 오메가랑 같은 생각이야.
오메가도 굉장했어.
오메가
헤헤, 맞아! 오메가도 엄청 도움이 됐어!
로자리아 언니!
로자리아
…흐응? 뭐냐, 꼬마?
오메가
오빠랑 언니들을 도와 줘서 고마워!
그리고… 우으…
오메가가 아까 나쁜 말 했어. 조립 안 됐다고 해서 죄송합니다…
로자리아
호오, 버르장머리가 아예 없지는 않구나.
원래대로라면 혼쭐을 내야 하지만…
뭐, 좋다. 오늘은 모처럼 힐데와 공투한 날이니,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주마.
오메가
오오…
로자리아 언니도 역시 좋은 사람이구나!
속으면 안 돼, 오메가.
저런 사람하고 가까워지면 큰일나.
로자리아
에잇! 시끄럽다! 임시라지만 시종이란 녀석이!
그 때, 반짝이는 빛무리가 바람에 실려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바람이 불어 온 곳을 바라보자, 지평선부터 하얀 빛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저건…
힐데
시작됐군.
이 세계는 그 괴물이 쓰러졌을 때 존재의의를 상실했다.
더 이상 존속할 힘을 상실한 셈이지.
곧 있으면, 우리도 원래 있었어야 할 곳으로 퇴거될 거다.
오메가
아세라 언니, 이거 봐! 오메가 손이 빛나고 있어!
아세라
앗! 나, 나도 그래!
로자리아
흥, 엔딩의 여운이라는 것을 모르는 세계로구나.
여봐라, 임시 시종.
임시였다고는 하지만 이 몸을 모셨다는 사실은 잊지 말도록.
조무래기들에게 당했다간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명심할게.
원래 시종 분께 안부 전해 줘.
힐데
저 녀석 말을 진지하게 들어 줄 것 없다, 단장.
그보다, 우리 쪽 신입이 성가신 일에 휘말리게 했군.
서로 마찬가지지.
아세라
응. 그래도 잘 풀려서 다행이야.
오메가
맞다, 힐데 언니!
[버스터 코어]가 오메가한테 말했어. 언니한테 전해 달래.
험하게 쓰지 말아 달랬어.
유미나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소대장은 키보드 칠 때도 손가락을 하나씩만 쓸 만큼 기계를 소중히 다루거든.
오메가
소중한 건가…?
힐데
크흠. 시끄럽다, 신입.
너희들이 치른다는 시험이 [여정]이라고 했던가.
분발해라. 너희는 아직 한참 성장해야 하니까.
아세라
으… 헤어지는 자리인데 기왕이면 꼭 될 거라고 해 주지…
유미나
칭찬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거든. 소대장은.
힐데
스스로 칭찬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무래도 신입은 여기 좀 더 남아 있어야겠군.
유미나
윽…
아세라
아. 미나야.
좀 어때? 속이 후련해?
유미나
…글쎄. 긴장되네.
원래대로 되돌아가면, 리플레이서 킹과 맞닥뜨릴 테니까.
아세라
앗, 그러고 보니…
유미나
괜찮아.
어차피… 그 녀석한테 질 생각은 없었거든.
다들 고마워. 여기 와 줘서.
너희 덕분에, 내가 왜 싸우기로 했는지 다시 알게 됐어.
흩어지던 세상이, 온통 하얗게 물들어 간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사라진다기보다…
환한 빛 너머로, 그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힐데
…이걸로 마지막이겠군.
돌아가면 여기서 겪은 일은 꿈처럼 느껴질 거다.
그러니 이제…
너희 길로 돌아갈 시간이다.

오메가
우으… 누, 눈부셔…
아세라
여기가 어디야…?
천국인가…?
알리시아
어서 오세요, 여러분.
아세라
아, 알리시아님?
쭉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알리시아
여러분이 갔던 세계와 라비스타는 시간의 흐름이 서로 다릅니다.
오래 체류하셨다고 느끼셨겠지만, 여기서는 잠시 사라졌다 나타난 정도죠.
아세라
그렇다면 저희들… 돌아온 거네요.
알리시아
그렇습니다.
보다시피 [흉터]가 아물기 시작했군요.
여러분이 노력해 주신 덕분이겠죠.
오메가
오오…?
하늘의 흉터가 사라지고 있어!
알리시아
네, 세계의 복원력이 스스로를 치유하기 시작했군요,
늦든 빠르든, 상처는 아물게 되는 법이니까요.
알리시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하늘을 뒤덮었던 균열이 서서히 닫혀 갔다.
알리시아
이걸로 라비스타의 역사가 오염될 위험은 당분간 사라졌습니다.
세 분께 감사드려야겠군요.
처음 겪는 일인데도 훌륭하게 잘 해내 주셨어요.
해낸 거구나…
아세라
그러게. 겨우겨우 한 고비 넘긴 기분이지만.
오메가
헤어질 때 꼬르륵 소리 날 뻔했어. 참느라 힘들었어.
아세라
헤어질 때…
그러고 보니, 미나는 돌아가서 잘 해냈을까…?
잘 해낼 거야, 분명.
아세라
…역시 그렇겠지?
힐데의 말처럼 기억은 벌써 흐릿해져 갔지만, 감정만큼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아세라
아 참, 이럴 때가 아니지.
루나랑 스마일한테 얘기해 주러 가자!
오메가
맞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으면 둘 다 깜짝 놀랄 거야!
아세라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알리시아님!
앞으로의 [여정]도, 잘 지켜봐 주세요!
오메가
응! 안녕히 계세요!
알리시아
의욕적인 자세가 보기 좋군요.
그리고 단장님.
응? 나 말이야?
알리시아
아마, 그쪽 세계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셨겠죠.
너무 아쉬워하진 마세요.
언젠가, 다시 보게 될 날이 있을 테니까요.
그랬으면 좋겠네.
고마워.
알리시아에게 인사한 뒤, 아세라와 오메가를 뒤따라 나섰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는.

생채기가 아물어 가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스토리 및 일러스트 © Studio B-Side. 비공식 열람용 아카이브입니다 — 문의나 요청은 사이트 소개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