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는 끝나야한다 · 챕터 4
피신

아세라
휴우…
가도 가도 끝이 없네, 여기는.
정말 잿더미밖에 없구나.
유미나
그래. 우리가 처음 왔을 때는 무너진 건물 같은 게 여기저기 있었는데.
건물이 있었어?
그럼 여기도 사람이 살았다는 뜻인가?
유미나
…여기가 내가 아는 [이면세계]가 맞다면.
원래 이면세계는 오래 전에 멸망한 다른 세계들이라고 들었거든.
뭐, 아무튼 로자리아가 휘두른 불길 때문에 이 꼴이 됐지만…
리플레이서 놈들이 지하에 만들어 둔 시설은 아직 남아 있어.
지금 가려는 곳도 거기고.
아세라
리플레이서라니?
유미나
리플레이서 신디케이트.
우리가 싸웠던 테러리스트들이야.
납치에, 살인에, 인체 실험에…
이면세계에서 살 수 있는 신인류를 만들겠다고 온갖 짓을 벌인 놈들이었어.
아세라
그럴 수가…!
완전히 악당이잖아!
유미나
맞아. 그래서 이 이면세계까지 쫓아온 거야.
…녀석들이나 우리나, 전부 이 잿더미 아래 묻혀 버렸지만.
오메가
오메가 더 못 걷겠어... 배가 꾸루루루 해...
도착하려면 얼마나 더 가야 돼?
힐데
아직 한참 멀었다.
오메가
에엣? 아까부터 계속 걷기만 했는데?
힐데
현장에서 며칠씩 도보로 이동하는 건 흔한 일이다. 익숙해지도록.
오메가
우으으… 오메가 이러다 죽어 버려…
쉬었다 가는 편이 좋겠어.
힐데
…어쩔 수 없군.
저 구릉지대를 넘어가면 쉴 수 있는 곳이 나올 거다.
따라오도록.
오메가
오오… 그늘이 져 있으니까 시원해…
힐데
너무 방심하지는 마라.
너희가 [공허체]라고 부르는 것들이 곳곳에 퍼져 있으니 말이다.
여기도 공허체가 있을지는 몰랐어.
힐데
그래. 영향을 받는 건 너희들의 세계만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아세라
확실히 힐데는 이런 상황에서도 되게 침착하네.
꼭 베테랑 용병 아저씨들을 보는 느낌이야.
유미나
그 말 그대로야. 베테랑 용병이라는 거.
아세라
어? 그럼 혹시 미나 너도 용병이었어?
유미나
…그렇지, 뭐.
돈을 받고 [침식체]란 괴물들을 해치우는 게 우리 일이니까.
그보다 너희들, 언제까지 따라올 거야?
힐데의 장비를 수리하기 전까지는 동행해야지.
유미나
아직도 그 마왕 녀석이랑 싸울 작정이야?
여기 온 이유가 그거니까.
유미나
그만두고 원래 살던 데로 돌아갈 방법이나 찾지 그래.
쓸데없는 죽음은 사양이야.
아세라
유미나, 너 또…!
그렇게 신경 곤두세우고 살면 건강에 안 좋아.
유미나
뭐?
우리한테 화낸다고 일이 풀리진 않는단 뜻이야.
유미나
큭……!
힐데
한 방 먹었군, 신입.
유미나
소대장까지 저 녀석들 편을 들려는 거야?
힐데
애들 말다툼에 끼어들 생각 없다.
하지만 내 소대원이 엉뚱한 데 분풀이 하는 꼴도 별로 보고 싶진 않군.
그리고 한 가지 더.
유미나
응?
오메가
오오…?! 땅이 엄청 흔들려!
아세라
아냐, 오메가! 이건…!
유미나
이 녀석들, 땅 밑에 숨어 있었던 거야?!
힐데
무작정 돌아다니는 건 실속이 없다고 판단했나 보군.
그래 봤자 매복일 뿐이다! 전원 전투 준비!

아세라
하아…! 하…!
오메가
아세라 언니, 주변에 공허체는 더 없나 봐.
아세라
그래? 다행이다…
이쪽은 끝이야. 그쪽은?
유미나
이쪽도야.
하지만 매복이라니… 지능적이네, 이 녀석들.
아세라
아마 마지막에 나타났던 커다란 녀석 때문일 거야.
상위급의 공허체일수록 교활해진다는 얘기를 들었거든.
그래도 이렇게 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처음이지만, 우리 합이 잘 맞는 것 같지 않아?
유미나
…뭐, 그럭저럭.
힐데
단장이라고 했던가?
전황 파악이 제법이더군. 도움이 됐다.
아직 배우는 정도야.
힐데 도움도 받았으니까.
힐데
그렇게 겸손해할 필요 없다.
시야가 넓은 점은 우리 쪽 신입 애송이도 배우면 좋겠군.
유미나
…왜 날 걸고 넘어지는 건데?
그나저나… 좀 이상하네.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
유미나
예전에 여기로 몇 번 정찰을 온 적이 있어.
그 때는 괴물들과 마주친 적이 없었고.
아세라
그렇다는 건…
갑자기 수가 늘었다는 얘기야?
힐데
규모나 출몰하는 빈도나 예전보다 늘었다.
아마 그만큼 너희 세계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뜻이겠지.
접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지?
힐데
음. 너희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겠군.
아세라
그렇겠네… 하긴 아스트로 생텀에서 본 흉터도 엄청 커다랬어.
오메가
그 로자리아란 언니는 왜 그랬을까?
사이 좋게 지내면 될 텐데, 이렇게 전부 불태워 버리고…
유미나
모르겠어.
리허설이니 뭐니 좋을 대로 떠들다가, 이렇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젠장, 그 망할 자식…!
새삼스럽지만 무진장 위험한 애구나…
힐데
쓸데없는 고민으로 열내지 마라.
녀석이 변덕을 부릴 이유는 몇 가지 짚이긴 하지만…
어차피 지금으로서는 전부 추측에 불과해.
유미나
…알고 있어.
알고는 있지만…
힐데
이 지역은 이미 괴물들에게 노출된 모양이다.
우선은 움직이지. 괜찮겠나, 단장?
오메가, 조금 참을 수 있겠어?
오메가
…응! 오메가 꾹 참을게!
맞다! 맛있는 걸 먹는 상상을 하면 괜찮을 거야!
딸기 샤베트… 크로와상… 치즈 와플…
유미나
…상상한 걸 꼭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야 하는 거야? 어째 나까지 배고파지는데.
아세라
그러게… 생각해 보니 하루 내내 한 끼도 못 먹었지…
서둘러야겠어.
보급 없이는 싸우지도 못해.
힐데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다.
선두로 가서 괴물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 천천히 따라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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