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는 끝나야한다 · 챕터 10
직시

유미나
내가… 이 상황을 만들었다고?
아세라
듣지 마, 미나야! 그냥 도발일 거야!
로자리아
제법 신선한 농담을 할 줄 아는구나, 여난에 휘말린 필멸자야.
이 몸이 너희를 속여 넘길 필요가 있겠느냐?
아세라
그, 그야 자기 공격이 통하지 않으니까 시간을 끌려는 거겠지!
로자리아
흥, 말이 안 통하는 여자로군.
모처럼 이 몸이 친절을 베풀어 줬건만.
힐데
…그렇군. 시간이 어긋났을 때부터였나.
유미나
소대장…?
아세라
자, 잠깐만!
힐데까지 미나가 범인이라고 생각해? 함께 싸운 동료면서!
힐데
미안하지만 범인도 뭣도 아니다.
애초에 자기가 뭘 했는지 자각할 수도 없을 테니까.
뭔가 실마리가 떠오른 거야?
힐데
당시에 나는 저 녀석….
아스모데우스와 대치 중이었다.
확실히 당시에 충돌은 시기상조였지.
하지만 그 때…. 신입 애송이가 양자 터널을 통해 나타났지.
유미나
…맞아.
리플레이서 킹을 쫓아 갔는데…. 엉뚱한 곳에 떨어졌어.
힐데
내가 아스모데우스와 대치했던 건 리플레이서 퀸이 퇴각한 직후였다.
네가 아직 제자 녀석과 차원함, [뉴 오하이오]에 있을 시기지.
유미나
뭐…?
힐데
양자 터널은 불안정하다, 신입.
그렇기 때문에 확률적으로는 있어선 안 될 가능성도 현실에 불러올 수 있지.
유미나
그 말은….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고?
힐데
글쎄, 그보다는….
미래에 닿았다고 해야겠지.
양자터널을 통해 네가 원한 미래로 분기한 세계가 하나 더 만들어진 거다.
유미나
그럼 뭐야, 소대장?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이 전부 나 때문에 벌어졌다는 거야?
말도 안 돼…. 그런 건….
애초에 이 이면세계에 불을 지른 건 저 녀석이잖아!
로자리아
오호라, 그러는 넌 방금 전에 멀쩡하지 않았느냐?
설마 이제 와서 자기 실력 덕분이라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유미나
그건…!
로자리아
여기는 양자 터널의 불안정성이 만들어낸 가능성의 세계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움직이게 만든 건 바로 네 의지야.
내 불길은 연출일 뿐. 결국 어떤 식으로든 이런 상황이 되었을 거다.
유미나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
소대장! 뭐라고 말 좀 해 봐!
힐데
…….
유미나
소대장…?
로자리아
흐응, 힐데는 이미 눈치챈 모양인데?
그러니 말해 봐라, 어린 늑대야.
킹인지 뭔지 하는 잔챙이를 따라가는 대신, 여기로 되돌아 온 이유를.
유미나
웃기지 마. 그런 이유 따윈….
나한테, 그럴 만한 이유는….
…나래는 나한테 하나뿐인 친구였어.
그런 애가…. 또 한 번 내 눈앞에서 죽으려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지켜만 봐야 했어….
아세라
미나야….
유미나
양자 터널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계속 생각했어.


유미나
지금이라도…. 전부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나래를 막아서, 못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게 잘못이야?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한 게?
대체 왜…!


유미나
왜 그렇게 아무 미련 없다는 듯이 희생하는 건데!!
젠장……!
오메가
미나 언니…. 울고 있어….
로자리아
흐흥, 겨우 감이 좀 오는 모양이구나.
자, 이제 어떻게 할 테냐. 밖에서 온 자들아.
아세라
그게 무슨 소리야?
로자리아
너희가 찾던 자가 누군지 알게 되지 않았느냐.
친구에 대한 미련이 양자 터널에 간섭을 일으켜서, 세계선이 분화됐다.
하지만 되돌아가 줄 시간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혼자 과거에 남겠다고 주저앉아 봤자, 남는 건 이런 황무지뿐이라는 거지.
유미나
…….
로자리아
그러니 이 다음은 내가 아니라 어린 늑대에게 칼을 들이밀 차례 아니더냐?
뭐, 당장은 고민해도 상관없다.
어느 한 쪽도 못 고르고 갈팡질팡하다가 전부 잃는 꼴도 재밌을 테니까.
아하하하하!
오메가
오, 오빠랑 아세라 언니는 그런 짓 안 해!
로자리아는 언니는 조립도 덜 됐는데 마음도 고장났어!
로자리아
조립이 덜 됐다고?
...지금 키를 가지고 얘기한 거냐?
오메가
키 가지고 얘기한 거 맞아!
쪼, 쪼그맣고 조립도 덜 됐는데 마음은 엄청 망가졌어!
로자리아
이… 이 고철 더미만도 못한 녹슨 깡통 주제에 감히…!!
아세라
…해결할 방법도 있어?
로자리아
호오…?
유미나
……아세라?
아세라
로자리아, 넌 처음부터 이 세계가 나타난 원인이 미나라는 걸 알고 있던 거지?
그럼 해결할 방법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로자리아
글쎄, 어떨까?
지금은 하찮은 필멸자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 마음이 들지 않는구나.
아세라
뭐, 뭐라고?
이 상황까지 오게 만든 건 네 책임도 있는 거잖아!
유미나
…이제 됐어, 아세라.
네가 말한 대로 해. 날 쓰러뜨려.
아세라
아, 아냐! 그런 약한 소리 하지 마!
유미나
하지만….
아직 방법은 남아 있어.
유미나
없는 말 지어내지 마. 이제 와서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힐데
…기다려라, 신입.
일단은 단장을 믿어 보도록 하지.
유미나
소대장까지….
고마워, 힐데.
힐데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 시도해 봐서 나쁠 것 없다고 판단한 것뿐이니까.
그래서, 그 방법이 뭐지?
임시 시종에게는 알려 줄 수 없을까?
로자리아
오호라, 시종을 자칭하면서 감히 내게 요구하는 것이냐?
요구가 아니라 거래야.
목마 태워 준 값어치만큼은 될 것 같은데.
아세라
모, 목마라니?
오메가
오메가도 목마 타고 싶었는데…
로자리아
아하하하핫!
이 몸을 어깨에 태우는 영광을 하사했건만, 배짱도 좋구나.
좋다. 이번 한 번만 특별히 허락해 주지.
힐데
…말장난에 어울려 주다니 의외로군.
이번엔 무슨 바람이 분 거지, 아스모데우스?
로자리아
목적을 달성했는데 텔레비전도 감자칩도 없는 곳에 더 머무를 필요가 없지.
그리고 뭣보다….
로자리아
…조치는 이미 끝내 뒀거든.
스토리 및 일러스트 © Studio B-Side. 비공식 열람용 아카이브입니다 — 문의나 요청은 사이트 소개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