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SPR

별빛 궤적에 물들어가는 신년의 밤! · 챕터 6

맞잡은 손에 기댄 마음

루나

오오… 완전 대저택이네.

아세라

대저택이라기엔… 에핀델네 영지의 본가는 훨씬 클 걸?

여긴 그냥 NOA에 있는 별저일 뿐이니까.

루나

그럼 아세라네 집도 이것보다 크단 거야?

아세라

아마 그렇지 않을까…?

루나

우왓… 매일 점심값 걱정하는 아세라를 떠올리면 매치가 잘 안되는걸.

아세라

그야…! 내가 집을 멋대로 나와서 용돈을 못 받으니까…!

칫,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

루나

알았어 알았어~ 아세라 아가씨?

에핀델

파티에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스트라니스 영애.

아세라

에핀델!

에핀델

그런데… 대체 뭔가요 그 차림은. 드레스, 준비된 거 아니었나요?

아세라

그게… 출발 전 마지막까지 연습하다가 조금 늦어버려서…

아하하. 입고 올 시간이 부족했달까?

안에서 입으면 되지 않을까…?

에핀델

하아…누가 파티장에 오는데 옷을 현장에서 갈아입는다는 생각을 하나요?

아세라

아하하! 미안~!

에핀델

일단 영애는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다른 분들은 먼저 파티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루나

후후후! 입장 성공~!

그럼… 한번 즐겨 보실까? 부자들이 먹는다는 산해진미를!

웨이터

샴페인 한잔 어떠십니까?

루나

오오, 스마일! 봐봐, 무료로 이걸 막 준대! 너도 받아, 어서!

스마일

…다른 일행인 척.

웨이터

저쪽 코너에 치즈와 꿀을 올린 크래커, 마카롱과 에클레어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오른편에는 미니 비프 타르타르와 훈제 연어롤을 비롯한 케이터링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으니 자유롭게 이용해주세요.

루나

아세라… 고마워…!

스마일, 너도 같이 가서 구경하자~!

나는 연회장의 한쪽 구석, 벽에 살짝 기댄 채 낯선 풍경을 구경했다.

화려한 연회장의 인테리어와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음악.

그 안의 모두가 고급스러운 드레스와 정장을 입고 고상한 미소를 지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확실히 누구나 선망해 마지 않는 고급스러운 파티임은 확실했지만…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의 미소 띈 얼굴은 어딘가 묘하게 경직되어 보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즐거운 파티는 아닐 거라는 아세라의 말이 다시금 생각났다.

루나

음음~ 아, 단장!

여기서 혼자 뭐하고 있어? 저기 맛있는 거 많던데. 같이 갈래?

스마일

루나. 걸어 다니면서 음식 먹는 건 매너 위반.

루나

아차차. 그랬었지?

입가에 크림을 잔뜩 묻히고 온 루나의 목소리 너머로, 어떤 대화가 귓가에 들려왔다.

귀족 영애 A

들으셨나요? 오늘 행사에는 스트라니스 영애께서도 참석하셨다고 하더군요.

귀족 영애 B

스트라니스 영애라면…

혹시, 예전 돌로란트 가주의 혼인 축하연에서 별의 구원자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던…?

귀족 영애 A

네 맞아요.

귀족 영애 B

아아, 기억납니다. 여러모로… 참, 독특하셨지요.

귀족 영애 A

들리는 소문으론, NOA에서 구원단 활동 중이시라는 말도 있답니다.

정말… 별의 구원자를 좋아하시는 모양이에요. 스스로 구원단 활동까지 하시다니.

귀족 영애 B

워낙 구김살 없는 분이라 영애님들 중에서는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어 보입니다만…

역시 스트라니스 가문에서는 속을 많이 태우실 듯하죠?

귀족 영애 A

그러게 말이에요. 나이도 제법 드셨을 텐데…

여전히 전설 이야기나 입에 담고 다니시니, 보는 이가 더 민망할 지경이죠.

귀족 영애 B

그럼요. 품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꽤 크잖아요?

귀족 영애 A

그나저나, 오늘은 어떤 차림으로 오실지 궁금하네요.

귀족 영애 B

설마, 어렸을 적처럼 흙먼지 묻은 옷을 입고 오시려구요? 후후후!

귀족 영애 C

그럴 지도 모르죠?

귀족 영애 A

어머, 뭔가 보셨나봐요?

귀족 영애 C

제가 연회장 입구에서 우연히 봐버렸지 뭐예요?

평소 입고 다니던 옷 그대로 입고 오신 것 같은데…

설마 그 옷 그대로 무도회까지 나가시려는걸까요…?

귀족 영애 B

진짜요…? 아하하! 설마요~.

귀족 영애 C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울리지도 않는 자리에 와서 망신이나 당하지 않않을런지?

귀족 영애 A

그러게나 말이에요. 아하핫!

괜히 파티를 망치지나 않아줬으면 한달까요?

루나

…저것들, 싱글생글 웃으면서 정작 하는 말은 음흉하게 남 깎아내리기나 하고.

안되겠어. 가만히 있어봐. 내가 가서 따끔하게 한마디 하고 올 테니까. 단장은 여기-

스마일

루나. 한발 늦었음.

루나

어? 단장 어디 갔어? 방금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어쩌면 그들의 말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아세라에게서 귀족스러운 면모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우아하게 찻잔을 들기보다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기를-

하늘하늘한 드레스보다 움직이기 편한 훈련복을 선호한다.

그러니 어쩌면, 귀족들에게 아세라는 이런 곳에서 마주치기 껄끄러운 존재일지도 모르지.

귀족 영애들 사이의 지저분한 정치 싸움 또한 예상했던 바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다면 오히려 흥미롭게 엿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하려는 행동은 굳이 따지면 불필요하다.

그걸 알지만…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귀족 영애 A

어머, 신사분은 누구신지요?

나:

파티에서 만나서 할 일이…

나:

남 흉보는 것밖에 없나?

내 험담을 들은 것도 아닌데,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다.

아세라가 이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이유를 지금은 확실히 알 것 같다.

나:

귀족다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걸 말하는 건 아닐 것 같은데.

귀족 영애 B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지 잘…

귀족 영애 C

읏… 뭐,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네요. 저흰 그냥-

갑작스럽게 회장이 어수선해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몰렸다.

그 시선을 따라 향한 곳에는…

스토리 일러스트
스토리 일러스트

아세라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귀족 영애 A

저건… 스트라니스 영애?

귀족 영애 B

뭐죠? 저… 아름다운 드레스는?

귀족 영애 C

어… 어라? 분명 아까 제가 봤을 때는…

귀족 영애 A

저 금색 자수는… 설마 메종 델리제의 디자이너가 만든 드레스?

나와 눈을 마주친 아세라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귀족 영애 A

아, 안녕하세요? 스트라니스 영애. 오랜만에 뵙네요.

오늘은 정말… 근사한 드레스를 입고 오셨군요?

듣기로는 입장하실 때, 다른… 의복을 입고 있으셨다던데…?

아세라

아아. 보셨나요? 사정이 있어서 연회장에 도착한 뒤에 환복을 해야 했답니다.

그런데, 오랜만이라니. 저희 전에 뵌 적이 있었나요?

죄송해요. 기억이 잘 안나서.

귀족 영애 A

으긋…!

귀족 영애 C

이, 이런 자리에 너무 오랜만에 참석하셔서 기억이 안나실 수도 있겠네요.

스트라니스 영애는 이런 자리, 싫어하셨잖아요?

아세라

그렇죠. 그런데…

오랜만에 무도회에 참석하고 싶어졌달까요? 후후!

귀족 영애 C

…어머, 무도회에서 춤을 추려면 파트너가 필요하지 않나요?

파트너는 구하셨는지…?

아세라

그럼요. 당연히 구했죠.

이 사람이 제 파트너랍니다.

아세라가 내 팔을 잡아당겨 팔짱을 꼈다.

아세라

단장, 오래 기다렸지?

드레스 같은 건 자주 입질 않아서 그런가, 한참 걸려버렸지 뭐야.

귀족 영애 A

단장… 이라구요?

아세라

아아, 모두들 영지에 계시느라 NOA의 소식이 늦으신가 보네요.

이분이 바로 알리시아님이 직접 지명하신, 여정 단장님입니다.

귀족 영애 A

…! 저 신사분이…?

아세라

그렇답니다. 그 여정 단장님이 오늘밤 제 파트너에요.

그럼,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만.

으아…! 숨막혀 죽는 줄 알았네…!

나:

방금 뭐였어?

완전 다른 사람이 된 줄 알았잖아.

아세라

후후! 에핀델한테 특훈을 받았거든…!

이런 자리에서 얕보이면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더라고.

후우… 그래도 역시 난 이런 거랑 잘 안 맞는 것 같아.

이 타이밍에 어떤 말을 뱉어야 할지 신경쓰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구.

그나저나, 내가 도착하기 전에 뭔가 대화를 하고 있던 것 같던데?

무슨 내용이었어?

나:

…별 일 아니었어.

아세라

그래? 그럼 다행이고.

잠시간 말없이 나란히 걷던 아세라가 걸음을 멈췄다.

아세라

…그, 있잖아 단장.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말이야.

단장이 보기엔 나, 지금 어때? 어색해 보이지는… 않아?

나:

응…?

아세라

아하하! 나, 이런 옷 입어보는 거 너무 오랜만이라서.

일단 무도회라니까 무작정 맞춰 입기는 했는데-

막상 입고 나니까 엄청 낯선 감각이라고 해야하나?

거울을 봐도 나한테 잘 어울리는 지도 잘 모르겠고…

나:

엄청 잘 어울려.

아세라

저, 정말…? 나한테 잘… 어울려?

다행이네…!

별로이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단장이 보기에 괜찮다면…

응. 난 그거면 됐어!

루나

아세라~! 드레스, 완전 에쁘잖아…?

아세라

아하하! 정말? 고마워!

루나

그런데, 두 사람은 언제까지 팔짱을 끼고 있을 생각?

아세라

엣? 으아…?! 이건 그러니까-

스마일

안면부의 온도가 평균 대비 10퍼센트 상승을 감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귀한 귀족 영애를 연기하고 있던 아세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새빨간 얼굴로 팔을 휘적거렸다.

아세라

이제 슬슬 시작인 모양이야.

단장, 준비는 됐어?

나:

물론이지.

아세라

그럼… 한 곡, 같이 춰 줄래 단장?

아세라는 드레스 단을 살포시 들어올리며 내게 손을 뻗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세라의 움직임은 망설임도, 흐트러짐도 없었다.

어떤 의미로는 변함없이 아세라 다웠다.

힘차고, 절도있는 춤.

춤이라기 보다는 함께 협공을 하는 듯한 감각.

거침없이 나아가면서도 앞서가 멀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전의 춤과는 확실히 다르게-

우아하고,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건-

정말이지, 아세라다운 춤이었다.

아세라

…좋은 합이었어 단장.

나:

움직임이 좋은 걸.

연습한 보람이 있네.

아세라

후후! 그렇지? 내가 말했잖아? 할 수 있다구.

아세라의 뺨을 타고, 작은 땀방울 하나가 흘러내렸다.

아세라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

나:

뭐가?

아세라

단장이랑 같이 춤을 추기로 한 거 말이야.

평소에 하던 것처럼 등을 맞대고 검을 휘두르는 춤도 좋지만-

이런 춤도…

단장이랑 함께 하는 거라면 나쁜 기분은 아닌걸? 아하하!

무도회장의 밝은 조명 아래, 아세라는 그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에핀델

하아… 스트라니스 영애.

무도회 자리에서 춤을 청하는 건 레이디가 아니라 남성 쪽이라구요…!

크읏…! 너무 기본적인 거라서 가르쳐줘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노신사

아가씨, 몸이 불편하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에핀델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스토리 및 일러스트 © Studio B-Side. 비공식 열람용 아카이브입니다 — 문의나 요청은 사이트 소개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