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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R

바람, 달, 그리고 검 · 챕터 6

교차하는 마음

세르팡

하아… 하아…!

지쳤어… 더는 못 뛰어…!

토토

꾸룩…

나:

아침부터 쉬지 않고 달렸으니까.

페이

대신 거리는 벌렸다. 시간을 벌었어.

해가 저물었으니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지.

린

야간 경계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페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야지.

린

저희가 잠든 사이 당신이 도망치지 않는다는 보장은요?

페이

없다. 하지만 도망칠 이유 또한 없다.

이번 일이 해결되면 린, 너와 붙을 수 있지 않나!

강자와의 대련은 최고의 수련…

무의 길을 걷는 무인으로서 피할 이유가 없지!

린

…또 무의 길.

???

안녕! 여기 있었구나?

세르팡

응? 뭐야, 누구야?

린

당신은…?

???

히힛!

소녀의 소매에서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긴 사슬낫이 흘러나왔다.

시엔

티엔 언니, 계속 쫓을까요?

티엔

아니, 해가 저물었다. 그리고 녀석들은 숲속으로 들어갔지.

시엔

소수가 다수를 상대하기 유리한 지형이군요.

티엔

그래, 시엔. 네 말이 맞다.

사대천왕 중 하나인 사슬낫의 제니가 녀석들을 상대하기 적합한 환경이지.

시엔

사슬낫의 제니…! 10미터 길이의 사슬낫도 자유롭게 다룬다는 고수…!

후후… 경비대원은 저희 중에서 최약체.

하지만 사슬낫의 제니가 나선다면 녀석들도 멀쩡하진 않겠군요.

티엔

큭큭큭…

시엔

후후후…

티엔 & 시엔

하하하하하하!

사슬낫의 제니

맛있어! 한 그릇 더 줘!

린

네~ 잠시만요~

그나저나 제니, 고마워요.

땔감이 필요했는데 나무를 베어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칭찬의 의미에서 쓰담쓰담~

사슬낫의 제니

히힛! 나 잘했지?

나:

…저 애, 추격자 아니었어?

세르팡

린 언니는 아이들을 다루는데 도가 텄거든.

단장도 봤지? 만난 지 1분 만에 높이높이 하는 거.

페이

그런데 이상하군… 이런 꼬마한테까지 내가 원한을 샀던가?

사슬낫의 제니

아니? 나는 딱히 원한은 없는데?

스승님이 강해지고 싶으면 강자랑 싸우라고 했거든.

페이가 강하다고 들어서 찾아온 것뿐이야. 이젠 상관없지만! 히힛!

나:

으음…

페이

뭔가…

세르팡

경비대원도 그렇고, 사슬낫의 제니도 그렇고…

린

페이를 쫓아오는 이유가 원한이 아닌 경우도 있군요.

어쩌면 말로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슬낫의 제니

글쎄…? 하지만 티엔, 시엔은 불가능할걸?

두 사람이 페이에게 복수하려는 사람들을 끌어모았거든.

누구보다 페이를 원망하고 있었어.

세르팡

대체 뭘 하고 다닌 거야, 페이 사저…

페이

…술빵은 저번에 때려눕혔고, 사이비 문파는 뿌리를 뽑았고, 그리고…

나:

아직도 짚이는 게 많나 보구나…

린

…원래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하죠.

페이

음?

린

피해자만이 상흔을 그러안고 기억할 뿐.

당신이 아무 말 없이 풍월당을 떠났을 때처럼요.

페이

……흐음.

사슬낫의 제니

응…? 어라……

세르팡

다, 단장! 나도 한 그릇 더 줘!

토토

꾸, 꾸룩!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끝난 후.

한 명씩 불침번을 서기로 하고 나머지 인원은 잠에 들었다.

세르팡

쿠울… 사탕… 쿠울… 케이크… 에헤헤…

토토

꾸루욱… 꾸루우우우욱…

나:

……

린

……

페이

흐음… 이렇게 휘두르는 게 아닌가?

이렇게도 아니고…

천문을 완성하려면 아직도 멀었군.

…단장?

무슨 일이지? 다음 교대자는 린인데.

혹시 천문에 대해 듣고 싶어서 찾아왔나!? 그렇다면 오늘 밤 내내! 아니 내일 밤까지…

응? 풍월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아까 린이 했던 말 때문인가?

나:

민감한 질문이었다면 미안.

페이

아니, 상관없다. 말 못할 이야기도 아니니까.

하지만 질문의 범위가 넓군.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렇지.

그날부터 이야기해 볼까?

어린 날의 페이

커헉…! 콜록!

당주

뒷골목의 잡배가 행인을 습격한다 하여 와봤거늘…

설마하니 어린아이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구나.

어린 날의 페이

뭐야, 너… 왜 이리 쎄…!

당주

부모님은 어디 계시느냐?

어린 날의 페이

뭐…!? 몰라, 그게 뭔데!

당주

어린 녀석이 입이 거칠구나.

따로 부모가 있는 것 같지는 않고…

결정했다.

따라오너라, 어린 늑대야. 인간답게 살게 해주마.

어린 날의 페이

시끄러워! 꺼져!

당주

말본새가 거칠구나.

좋다, 교육은 풍월당 당주의 기본 소양.

위계질서부터 그 몸에 때려 넣어주마.

페이

핫핫핫! 그때 입에서 거품이 나올 때까지 두들겨 맞았지.

나:

웃으면서 할 이야기야…?

페이

뭐, 어떤가? 지난날의 추억인데.

원한 같은 건 티끌만큼도 남아있지 않다. 감사한 마음뿐이야.

당주님이 말한 대로 풍월당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었다.

돈을 뺏지 않아도 밥을 먹을 수 있었고, 땅바닥 대신 침소에서 잠들었지.

글을 읽고 쓰는 법. 타인과 교류하는 법.

그리고 당주님에게 무공까지 배웠다.

…행복했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았어.

나:

채워지지 않다니?

페이

무공을 배우면 배울수록 알 수 없는 갈증이 커져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풍월당의 무공은 나의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방황하던 내게 당주님이 조언하셨다. 모든 물줄기는 바다로 흐른다.

나:

만류귀종이구나.

페이

그래. 그때 처음으로 당주님을 따라 비밀 서재에 들어갔지.

세상에 잊힌 문파의 비급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무공을 수련해도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어. 그러나 단 하나.

천문서.

비급을 펼친 순간 깨달았다. 천문은 나의 사명이라는 걸.

내가 라비스타에 태어난 이유는 천문을 재건하기 위해서라는 걸.

그때 선택의 기로에 섰지.

모두를 저버리고 천문을 재건할지, 갈증을 견디며 이대로 살아갈지.

답은 하나였다.

나:

…후회하지 않아?

페이가 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페이

후회하지 않는다!

무의 길을 걷는 무인이라면 노려야 할 것은 한 가지! 최강!

천문을 완성한다면 나는 최강이 될 수 있다! 하늘의 달도 벨 수 있어!

그러니까…!

린

목소리를 낮춰 주시겠어요?

아이들이 깨겠어요.

페이

벌써 교대 시간인가?

린

예. 제 차례입니다.

페이

시간 참 빠르군.

수고해라. 나도 들어가서 눈 좀 붙여야겠어.

린

잠시만요, 페이.

페이

응?

린

제안할 게 있습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순순히 저희를 따라오시죠. 그러면 제가 당주님에게 말해서…

페이

거절한다.

나의 사명은 천문을 재건하는 것. 하지만 아직 완성하지 못했어.

쓸데없는 일에 낭비할 시간은 없다.

린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물어보죠.

페이

똑같은 대답을 들을 텐데?

린

그래도 묻겠습니다.

페이

핫. 마음대로 해라.

린

…밤이 깊었네요.

단장님도 들어가시죠. 오늘 하루 많이 피곤하셨죠?

편안한 밤 되세요, 단장님.

……

페이

무의 길을 걷는 무인이라면 노려야 할 것은 한 가지! 최강!

천문을 완성한다면 나는 최강이 될 수 있다! 하늘의 달도 벨 수 있어!

린

무의 길…

어린 날의 린

페이 사저, 위험해요…! 나무에서 내려오세요…!

어린 날의 페이

따라와라, 린. 너에게 보여줄 게 있다.

어린 날의 린

아으으… 당주님이 보면 화내실 거예요…!

어린 날의 페이

에잇! 시끄럽다, 빨리 와라!

어린 날의 린

굉장해… 굉장해요! 건물이 모래알보다 작게 보여요.

어린 날의 페이

저곳이 바로 동대륙의 수도다. 끝도 없이 펼쳐져 있지?

하지만 서대륙에는 동대륙의 수도보다 큰 도시가 있다더군. 세상은 넓어!

린, 나는 라비스타에서 최강이 될 거다.

무의 길을 걷는 무인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목표! 너 역시 그렇겠지?

어린 날의 린

아뇨…? 저는 사저랑 동문사제와 함께 있는 걸로 만족해요.

어린 날의 페이

따분한 녀석! 어디 가서 내 사매라고 하지 마라! 꿀밤을 먹여버릴 테다!

어린 날의 린

앗! 그런…!

그, 그럼 저는 사저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 드릴게요.

그것이 저의…

린

…후후.

바보 같이.

스토리 및 일러스트 © Studio B-Side. 비공식 열람용 아카이브입니다 — 문의나 요청은 사이트 소개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