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것들을 위한 소나티네 · 챕터 7
아련하고 무상한

클레어
...후우.
...진짜 카넬리아 님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거람.
진정하자, 클레어. 침착하는 거야. 침착하-
히꺄아악-!?
카넬리아
클레어의 목소리가 들려서 열어봤는데...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네요.
클레어
아, 아닙니다! ...어쩐지 오늘따라 유독 깜짝깜짝 놀라는 것 같긴 합니다만.
카넬리아
후후, 그런 날도 있을 수 있죠.
들어갈까요? 따뜻한 차를 준비해 두었답니다.
클레어
...네, 카넬리아 님.

카넬리아
이렇게 마주하는 건... 처음이지요?
가끔 캔들 스퀘어에서 만나면 잠깐 이야기 나누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클레어
(그때의 시작이랑 똑같아. 대화도, 상황도...)
카넬리아
...클레어?
클레어
앗, 죄송합니다. 카넬리아 님 앞이다 보니 긴장해서 그만...
카넬리아
후후, 긴장할 필요 없어요. 혼내려거나 타이르려는 게 아니니까요.
그냥... 음, 그래요. 수다라고 해둘까요?
다른 메이드들과는 한 번씩 이런 자리를 가지긴 했지만, 유독 클레어와는 시간이 맞지 않았네요.
지금까진 서로 바쁘고 여유가 없었지요. 이제 겨우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네요.
클레어
괜찮습니다. 기다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공허체들이 재차 창궐해 관측사 평의회 폴라리스와 공조도 하셨을 거고-
또, 근래 캔들 스퀘어를 방문해 주시는 구원자분들이 유독 부상이나 질병을 겪는 분들이 많으셨을 테니까요.
당연히 카넬리아 님께서 신경 쓸 여유가 없으셨을 건 알고 있었습니다.
카넬리아
...어머. 클레어가 이렇게나 다 알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가급적 선임급 위주로 업무를 진행했던 일들이라, 눈치채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클레어
아, 아니... 그... 계속 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들은 건 아니고, 그냥... 그렇지 않나 해서...
카넬리아
후후, 정말인가요?
캔들 스퀘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꼼꼼하게 인지하고 있다니...
클레어는 나중에 저보다도 훌륭한 메이드장이 될 수 있겠는걸요.
클레어
...과찬이십니다.
카넬리아
후후, 그래요.
이전에 휴가는 잘 다녀왔나요? 안색이 전보다는 훨씬 좋아 보이네요.
클레어
카넬리아 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에 푹 쉬고 올 수 있었습니다.
선임 메이드 분들보다도 먼저 휴가를 쓴다는 것이 조금은... 쉽지 않았습니다만.
카넬리아
휴가 전후에 그걸로 이야기했던 분은 없나요?
클레어
...네, 다행히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었지만, 사실 카넬리아 님께 몇 번인가 건의가 올라갔었다고 했었지.)
(왜 신입 메이드인 클레어가 선임 메이드들보다 먼저 휴가를 떠난 거냐, 하면서.)
(...그 선에서 끝난 걸 보니, 단순 건의로 일단락될 모종의 일이 있었을 것 같긴 하지만.)
카넬리아
아쉽네요. 실은 조금 더 길게 다녀오길 바랐었는데.
클레어
그래도 오래 자리를 비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면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합니다.
카넬리아
...음? 클레어가 쉬었던 건 나흘이었던 것 같은데... 착각이었을까요?
오히려 일주일로 늘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건 제 쪽이었던 것 같은-
클레어
앗, 그, 그게!
제 말은 그러니까... 일주일로 느껴질 만큼 푹 쉬었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카넬리아
...오늘 클레어는 조금 이상하네요.
뭐랄까... 조금 귀여운 것 같기도 하군요.
클레어
귀엽...!?
자, 장난인 걸로 이해하겠습니다...
카넬리아
후후, 어떨까요?
클레어
(이렇게 좋은 사람이... 어째서 지금은 그렇게 변해버리고 만 걸까.)
카넬리아
너무 늦은 질문을 드리는 것 같긴 합니다만...
캔들 스퀘어의 생활은 어떤가요? 많이 익숙해졌나요?
클레어
물론입니다. 카넬리아 님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카넬리아
후후, 그런가요?
클레어가 처음 캔들 스퀘어에 찾아왔던 날이 잊히질 않다 보니, 조금은 더 신경을 쓰게 된 걸지도 모르겠군요.
푸른 장미의 가시넝쿨다운, 박력 넘치는 구직 요청이었어요.
클레어
카, 카넬리아 님… 그때 일은…!
카넬리아
그리고 그날은... 제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답니다.
클레어
...여러 가지 생각, 말인가요?
카넬리아
클레어가 캔들 스퀘어에 처음 왔던 날.
얼마나 고단한 길을 지나왔을지 모를 지저분하고 남루한 행색이었지만...
저를 바라보았던 클레어의 그 눈은 잊을 수가 없어요.
절박함, 간절함... 그런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눈이었죠.
클레어
...카넬리아 님께서 절 캔들 스퀘어의 메이드로 받아 주신 건...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
절박하고 간절한 눈을 하고 있어서…?
카넬리아
…캔들 스퀘어의 메이드를 희망하며 찾아오는 분들 중에, 저마다의 이유로 절박하고 간절한 눈을 가지신 분들은 많지만…
클레어의 눈에서는 또 다른 게 보였거든요.
삶을 원하고, 미래를 갈망하는-
별빛처럼 타오르는, 밝은 눈.
왠지 모르겠지만 그 눈이…
…조금은, 부러웠답니다.
클레어
부러…우셨다고요…?
카넬리아
네, 심지어는 살짝 질투가 나기도 했지요.
클레어
어, 어째서죠…? 카넬리아 님은-
카넬리아
클레어에게만 살짝 이야기하는 거지만…
카넬리아 리스라는 사람은, 클레어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클레어
…
(…맞아. 그때도 이런 대화를 했었어.)
(그때는 단순히, 카넬리아 님께서 겸손해하시는 걸로만 생각했지.)
카넬리아
…혹여, 허상을 따르다 실망하지는 않을까.
캔들 스퀘어의 다른 메이드 분들을 아끼지 않은 것은 물론 아니지만...
부러움도 있었지만, 그런 걱정 탓에 클레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답니다.
클레어가 저를 닮고 싶다고 얘기했어도, 저를 닮게끔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요.
클레어
...왜.
왜 그런 말씀을...
카넬리아
...후후, 이런. 클레어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제 이야기만 해버렸군요.
클레어
괜찮습니다. 저는 좀 더...
좀 더, 카넬리아 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카넬리아
...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클레어
...괘종시계 소리...
카넬리아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지요.
다음에… 분명 다음에 더 얘기해 드릴 수 있을 거예요.
클레어
다음은 없으셨잖아요!
카넬리아
클레어…?
클레어
…아니, 저…
죄송… 합니다…
카넬리아 님, 제가… 잠시 흥분을…
카넬리아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에 꼭, 클레어와 또 이렇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테니까요.
클레어
……
…네.
카넬리아
아, 참. 제가 줬던 책은 잘 가지고 있나요?
클레어
네. 당연히 가지고 있습니다.
충분히 고민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에 책을 보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합니다.
카넬리아
그래요, 그거면 충분하겠군요.
언제나 정답을 알려줄 거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분명 필요할 때 도움이 될 거예요.
...클레어라면,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클레어
카넬리아 님.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혹시 저에게, 혹은 캔들 스퀘어의 누구에게라도-
이야기하지 않으셨던 비밀이 있으신가요?
카넬리아
...
클레어
만약, 만약 그 비밀을 저나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요?
카넬리아
...사람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서랍장이 하나씩 있답니다.
그 서랍장 안에는 기억, 감정, 또는 밝히지 못할 비밀을 보관하지요.
서랍장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마다 달라요.
자신만이 가진 열쇠로 잠글 수도, 정갈하게 정리하거나 아무렇게나 흐트려뜨릴 수도 있는 거예요.
당연하게도 상대방의 서랍장 속에 있는 것을 전부 내놓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끝내 단 한가지라도 숨기려는 사람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답니다.
...그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림자를 보여주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고.
추한 인상으로 기억되거나, 악감정을 가지지 않길 바라는 것일 수도 있죠.
클레어
그건... 카넬리아 님께서도...?
카넬리아
...대답하지 못해 미안해요, 클레어.
오늘 면담은, 이만할까요?
클레어
알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카넬리아 님.
카넬리아
...클레어.
클레어
그럼.

벨 리스
...흥.
토끼 복장이라도 입으면 딱이겠어. 왜, 토끼들 눈도 빨갛잖아.
클레어
...시끄러워요.
벨 리스
대체 어쩌자고 진짜도 아닌 사람한테 다 쏟아낸 거야?
실제 과거에서는 이렇게 울고불고하지 않았을 거 아니야.
클레어
...그때는 카넬리아 님께서 사라지실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단순히 카넬리아 님과 이야길 나눈 것만으로도 기뻤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전부 알고 있잖아요.
카넬리아 님의 부재도, 그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그래서, 조금 흔들렸을 뿐입니다.
벨 리스
…
...괜찮아?
클레어
네?
벨에게 걱정을 받다니... 어지간히도 흔들린 모습을 보였나 보군요.
…흠흠.
다른 메이드들에게는-
벨 리스
당연히 비밀로 해줄 거야.
이번 달 정원 조경에 들어간 예산이 늘어난걸… 감안해 준다면.
클레어
벨...
벨 리스
후훗...
클레어
…말도 안 되는 이야기하지 마세요!
벨 리스
힉?!
클레어
캔들 스퀘어의 메이드가 남의 약점을 잡아서 협박이라니…! 기본자세부터 다시 잡아 드리겠습니다!
벨 리스
자, 잠깐-?! 히익?! 그,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 그냥 분위기를 좀 풀어보려고-
히아아악-!!
클레어
...흠흠.
아무튼, 여기가 기록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제 카넬리아 님께서... 캔들 스퀘어를 떠나게 되시겠죠.
벨 리스
끝까지 갔을 때 현실로 돌아간다는 확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기록을 매개로 구축하는 주술의 형태라면, 하나의 사이클을 전제로 구성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거나, 종료되면서 밖으로 나가거나 하는 변화가 있을거야.
클레어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벨?
벨 리스
…아, 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야.
해가 저물어가고 있는데도 아무 변화가 없어서.
분명 일과 위주로 기록되어 있으니 캔들 스퀘어의 업무가 끝나는 지금쯤이라면… 이 기록도 끝나야 하는데.
클레어
아직, 계속되는 기록이 있는 것이군요.
카넬리아 님께서 남겨 두신 마지막 기록이…
…
끝까지 확인해 보죠.
카넬리아
오늘 일과는 여기서 모두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메이드 일동
네, 카넬리아 님.
카넬리아
저는 오늘 집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있을 예정이니, 따로 불침번 인원은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다들 아침까지 푹 쉬라고 전달해 주세요.
메이드 A
네? 하지만 그런 일을 카넬리아 님께 맡겨드릴 수는…
카넬리아
괜찮답니다. 겸사겸사 제가 보면 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최근에 부쩍 바빠져 다들 피곤하다는 건 인지하고 있습니다.
밤중에 외출하는 인원이 없도록 확실히만 해주세요.
메이드 B
…그, 그래도 될까요?
카넬리아
물론이죠.
메이드 일동
네, 알겠습니다. 카넬리아 님.
벨 리스
…들었어?
클레어
…혼자 남아있고 싶다는 얘기처럼 들리는군요.
벨 리스
떠나기 전의 준비를 위해서…?
클레어
그럴 수도 있겠죠. 혹은-
…누군가를 만날 계획이 있는 걸지도 모르고요.
어느 쪽이든지 간에, 카넬리아 님께선 그걸 기록으로 남기신 모양입니다.
벨 리스
…클레어. 내가 아가논으로 떠날 때…
클레어가 내게 해줬던 말, 기억하지?

클레어
만약… 만약에 아가논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벨 리스
만나게 되면…?
클레어
…
매뉴얼대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캔들 스퀘어의 메이드로서.

클레어
...매뉴얼대로 처리하라고 했었죠.
벨 리스
어떤 경우에도… 동료를 믿어줄 것. 그들의 힘이 되어 줄 것.
클레어
만약 동료가 잘못된 길로 빠지더라도 결코 미워하지 말고,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도와줄 것.
벨 리스
물론 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올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하지만, 이 책을 쓸 때의 언니가 이미 잘못된 길로 빠질 걸 상정했다면-
결국 언니는 이 책을 읽을 누군가가 자신을 잡아주길 바랐을지도 몰라.
클레어
이 책을 읽는 누군가는... 자신을 막아주길 바랐다니.
차라리 처음부터 잡아달라고 얘기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벨 리스
늘 곱게 에둘러서 표현하는 건 언니의 나쁜 점이기도 하니까.
항상 무언갈 숨기고, 혼자 떠안으려고 하는 거.
클레어
...
...그럼 우리가 직접 물어보러 가는 수밖엔 없겠군요.
올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돕기 위해서요.
벨 리스
...그래.
안녕을 고하러 가는 거야. 과거의 망령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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