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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R

잊혀진 것들을 위한 소나티네 · 챕터 5

실마리

메이드 A

클레어, 바쁜가요?

잠깐 일손이 필요한 일이 생겼어요.

비품 창고 물품 명단을 최신화해야 하는데, 물건이 좀 많아서요.

클레어

아, 네. 바로 가겠습니다.

메이드 A

비품 창고 업무가 끝나면, 캔들 스퀘어 내의 수선이 필요한 의류들을 전부 모아주세요.

총 몇 벌인지 조사한 후에 외주 업체에 맡겨야 하거든요.

벨 리스

응? 잠깐, 수선이 필요한 의류를 외주에 맡긴다고?

외주에 보낼 것도 없이, 그 도마뱀에게 부탁하면 될 일이잖-

메이드 A

도마뱀... 이라고요?

갑자기 도마뱀이라니, 캔들 스퀘어에 누가 애완 도마뱀이라도 키우나요?

벨 리스

...아, 맞다.

클레어

...하아.

죄송합니다. 이번에 들어온 견습 메이드인데, 저와 같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헛소리를 좀 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해 부탁드립니다.

메이드 A

아... 네, 그렇군요.

썩 미덥진 않지만... 어쨌든 일손은 많을수록 좋으니, 같이 와주세요.

클레어

네, 알겠습니다.

벨 리스

...쳇. 그 도마뱀이 없던 시간선인 걸 잊고 있었어.

클레어

무리도 아니죠. 이런 일은 늘 스칼렛에게 부탁해 왔으니까요.

그래도, 크게 의심받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이건... 인문학 책이니까, 좌측 하단부에 있는 서고에 보관하고...

그리고 이건...

벨 리스

...뭐야 이게?

나만의 메이드와 함께하는 밤을 위한 지침서...?

이, 이딴 게 왜 있는 거야!

클레어

과거에는 이런 식으로 비밀리에 들여온 책들이 많았던 모양이네요.

그땐 신입이라 이런 것까진 알지 못했습니다만.

벨 리스

만약 지금의 클레어였다면 장서관의 모든 책을 뒤집어엎었겠지...

클레어

그야 당연하죠.

캔들 스퀘어에 불경한 도서를 반입하다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도, 저 책을 마지막으로 장서관의 도서 정리도 끝낼 수 있을 것 같군요.

목록도 다시 정리하고, 조건에 맞지 않는 도서는 회수 표시를 해두었으니...

이후에 일할 사람들이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겁니다.

벨 리스

…그런데 말야, 클레어.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그냥 적당히 구색만 맞추면 되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클레어

구색만 맞추다뇨. 그런 안온한 생각으로는 캔들 스퀘어의 메이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비록 현실이 아니라고 해도, 이곳 또한 캔들 스퀘어.

일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는 것은 메이드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어요.

벨 리스

...대체 직업병인지 강박증인지...

클레어

뭐라고요?!

벨 리스

히익! 왜, 왜! 틀린 말은 아니잖아!

매번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렇게 일을 하고…!

어딘가로 가라 라던가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어라 같은 이야기를 들어서 이동하면…

또 다른 아침이 되서 새로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어 있잖아!

이런 걸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고!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열심히 할 필요가-

클레어

아뇨, 그래도 맡은 일을 대충 하는 건 용납 할 수 없습니다.

벨 리스

너무해… 사람도 아냐…

클레어

그리고,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조금씩은 짐작이 갑니다.

벨 리스

뭐? 정말?

클레어

아직은 추측이긴 하지만요.

벨 리스

치잇…

...이대로 로비로 나가면 또 뭔가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어 있겠지?

클레어

일을 끝내고 나면 장소가 바뀌는 건 틀림없습니다.

다만, 이다음의 상황이 제가 생각한 대로라면... 제 추측이 어느 정도 맞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메이드 B

카넬리아 님!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옆집의 잘생긴 청년이요!

카넬리아

네, 그랬었지요. 그분 성함이 브랜던 씨... 라고 하셨었나요?

메이드 B

아! 맞아요! 아무튼 그 남자가-

벨 리스

...언니잖아?

아니, 그보다... 저쪽에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클레어

...연애 상담... 인 것 같네요.

메이드 B

카넬리아 님, 저 어떡하면 좋죠? 진짜 그 남자랑 꼭 잘 되고 싶은데...!

카넬리아

...으음, 글쎄요.

제 생각에는 브랜던 씨라는 분도 호감이 없지는 않으신 것 같은데요?

메이드 B

헉?! 저, 정말인가요?

카넬리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다가갈 필요는 없어요.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흔들리기 쉽고, 애정이라는 건 눈을 멀게 하죠.

조바심이 나고 불안할 때, 제가 어떻게 하라고 했었는지 기억나나요?

메이드 B

...심호흡 하고, 필요하다면 지금의 마음을 어딘가에 적으라고...

카넬리아

좋아요.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된답니다.

천천히 마음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작은 계기부터 시작해 보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이를테면, 그 분께서 운영하시는 공방의 손님이 되어본다던가요.

메이드 B

공방의 손님...

아...! 그런 방법이 있겠네요!

벨 리스

우리 언니, 연애 상담도 해줬어?

클레어

굳이 얘기하면, 상담이라기보단...

카넬리아 님과 얘길 하다 보면 다들 저렇게 되곤 했습니다.

속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 놓게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벨 리스

...경험담인 것 같은데.

클레어

...딱히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메이드 B

정말 감사합니다, 카넬리아 님!

앗, 시간이 벌써 이렇게...

저는 다시 업무하러 가보겠습니다!

카넬리아

아, 클레어. 왔군요.

클레어

지금 막 업무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카넬리아

후후, 네. 고생하셨습니다.

그동안 쉬는 날도 없이 계속 일해서 걱정이었는데...

제때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군요.

곧 여름이니, 때가 되면 눈치 볼 것 없이 얼른 휴가부터 다녀오세요.

구원자분들께 봉사하려는 마음만큼은 좋지만...

그만큼, 본인의 컨디션 관리도 메이드에겐 중요한 요소니까요.

클레어

아... 네. 알겠습니다.

심려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카넬리아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클레어는 아주 잘하고 있답니다.

...음, 생각해 보니 클레어와 면담을 나눠본 적이 한 번도 없군요.

조만간 같이 차 한 잔이라도 마실까요?

클레어

...네, 전 언제든 괜찮습니다.

카넬리아

후후, 그래요. 이만 물러가 보세요.

클레어

네, 그럼.

벨 리스

...지금 얼굴, 도마뱀이 사고를 쳤을 때보다 훨씬 별로인 거 알아?

클레어

...

벨 리스

왜, 뭔가 알아낸 게 있어? 아까 얘기한 추측이 맞아 떨어져?

클레어

...벨, 아마도 전-

카넬리아 님과 차 한 잔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벨 리스

...너무 뜬금없어서 할 말이 없어졌어.

클레어

모든 장면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저는 분명... 이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카넬리아

구원자분들께 봉사하려는 마음만큼은 좋지만...

그만큼, 본인의 컨디션 관리도 메이드에겐 중요한 요소니까요.

클레어

그래요. 벨은 이 당시 메이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알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일의 순서들은, 제가 캔들 스퀘어에 들어왔을 때 경험했던 일들과 일치합니다.

들어 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정원의 관리를 담당했고…

이후에 갑작스레 주어진 비품 창고 정리의 일, 옷의 수선…

그리고 그 얼마 후에 장서관 정리를 한번 했던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 때쯤 카넬리아 님으로부터 휴가를 받게 되었죠.

벨 리스

...그러니까, 그건...

이 세계에서는 과거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라는 거야?

클레어

제가 메이드 일을 시작한 날부터… 그때부터의 하루하루가 똑같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벨과 저라는 변수가 있기에 상황까지 완전히 같을 수만은 없겠지만요.

하지만 중요한 사건이나 대화는 반복되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입니다.

벨 리스

그럼 차 한 잔을... 면담을 했다는 건, 시기상 휴가에서 복귀한 다음이고?

클레어

…네, 다만 카넬리아 님이나 저도 시간 여유가 없어서…

실제로 면담이 이루어진 건, 한참 나중의 일이었어요.

벨 리스

흐흠, 언니와 단 둘이 면담이라…

클레어

네. 면담도 꽤 즐거웠습니다. 메이드장과 메이드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해주셨으니까요.

벨 리스

그냥 수다 떨었다는 얘길 엄청 어렵게 하네.

하긴, 클레어가 수다라니, 썩 잘 어울리는 얘긴 아니긴 하지.

클레어

읏, 지금도 소소한 대화 정도는 종종...

...하아, 아뇨. 그때만큼 마음을 전부 열고 이야길 나눠본 적은, 몇 분을 제외하곤 없는 것 같긴 하군요.

벨 리스

그런 걸 보면 언니랑 되게 많은 일이 있었나 보구나.

클레어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언니랑 가까웠나보네.

클레어

물론 가까워지고 싶었습니다.

다만, 제가 카넬리아 님께 가까워지는 속도보다 그 분께서 멀어지는 속도가 훨씬 빨랐을 뿐이죠.

마치... 처음부터 멀어질 것을 상정해 두신 분처럼요.

벨 리스

처음이라...

그러고 보니, 클레어가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클레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었죠.

타인이 듣는다면 아마 흥미로운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저로선 도려내고 싶은 흑역사와 맞닿아 있거든요.

벨 리스

내가 듣기론 언니가 죽을 뻔했던 클레어를 구해줬다고 들었는데...

클레어

…네, 그랬었죠.

벨 리스

흐음-? 흐음-?

클레어

…벨? 무슨 생각이죠?

벨 리스

이쯤 되면 나한테는 슬슬 얘기해줘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클레어

무슨…!

벨 리스

나도 언니에 대해서는 잘 몰라.

언니가 캔들 스퀘어의 메이드장이 된 이후로는 집에 거의 없었으니까.

어떤 사람이었는지, 좀 더 알고 싶어.

클레어

...

벨 리스

걱정하지 마.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해.

애초에... 얘기할 사람도 없다고.

클레어

...그 말, 반드시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래도 지금의 벨이라면 괜찮겠다 싶어서 얘기하는 거니까요.

벨 리스

아잇, 진짜! 알겠대도 그러네!

클레어

...하아.

시간을 꽤 오래전으로 돌려봐야겠군요.

당연하지만... 이 세계보다도 더 이전에 있었던 일이니까요.

스토리 및 일러스트 © Studio B-Side. 비공식 열람용 아카이브입니다 — 문의나 요청은 사이트 소개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