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것들을 위한 소나티네 · 챕터 4
기록의 첫 장

클레어
카넬리아… 님…
카넬리아
여기 있었군요, 클레어.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클레어
...아, 아뇨, 아무 일도 없습니다.
카넬리아
클레어, 혹여 몸이 좋지 않다면 하루쯤 휴가를 내어도 괜찮답니다.
다른 분들도 클레어가 휴가를 낸다고 하면 별말없이 수긍할 거예요.
그만큼 클레어는 열심히 일했으니까요.
클레어
...다른 분들? 열심히 일했다…?
카넬리아 님, 혹시...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제가 이곳, 캔들 스퀘어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는지 궁금해져서요.
카넬리아
...음?
후후, 정말이지 별난 걸 물어보시는군요.
그렇네요, 클레어가 대뜸 제게 찾아와서 메이드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게...
벌써 한 달은 된 일이군요.
클레어
...그렇군요. 제가 메이드가 되고 한 달…
카넬리아
클레어? 정말 괜찮은 거 맞나요?
클레어
네, 괜찮습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업무 수행에 지장 없게끔 하겠습니다. 다음 지시를 부탁드립니다.
카넬리아
으음, 다음이라…
클레어가 열심히 일해준 덕에,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은 없긴 하네요.
클레어
그럼 정원 조경에 가지치기라도...
카넬리아
아, 그러고 보니 방금 다른 메이드에게 정문 안쪽의 낙엽을 쓸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같이 도우면 더 빠르게 끝낼 수도 있겠죠.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클레어
네, 알겠습니다. 카넬리아 님.
카넬리아
늘 노력해 줘서 고맙네요, 클레어.
하지만, 피로가 쌓이는 것 같다고 생각되면 꼭 말해주세요.
클레어
…감사합니다.
카넬리아
그리고 일이 다 끝나시면...
로비로 돌아와 주세요. 아시겠죠?
클레어
...? 아, 네. 알겠습니다.
내가 캔들 스퀘어에 들어온 지 한 달...
심지어 카넬리아 님까지 있는 상황.
이건 아무리 봐도-
...응?
벨 리스
하아...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현실인지 뭔지도 모를 곳이 하필 또 캔들 스퀘어인데다...
누가 봐도 가짜인 것 같은 언니가 메이드장 행세를 하고 있다니.
...심지어 나는 그 지시에 따르고 있고...
클레어
걱정하지 마세요.
지시에 따르는 건 벨 뿐만이 아니니까요.
벨 리스
어... 으응? 클레어?
...아니, 잠깐만. 진짜 클레어 맞아?
클레어
그럼 가짜 클레어도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아, 있었네요.
제 컵에 맞고 사라진 도플갱어가.
벨 리스
흥, 뭐야.
그 말을 하는 걸 보니, 진짜 클레어구나.
그런데... 어째 당황한 기색은 하나도 안 보이네?
분명 과거의 유령을 만났을 텐데 말이야.
클레어
...네, 만났죠.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걸로 봐서는...
벨도 이곳이 과거라고 어느 정도는 확신하는 건가요?
벨 리스
그야 당연하잖아.
언니가... 카넬리아 리스가 아직 메이드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내가 미쳐버렸거나, 이 세상이 모두 꿈인 게 아니라면-
과거라고 밖엔 얘기할 수 없겠지.
클레어
카넬리아 님께서 메이드장을 맡고 있던 때의 캔들 스퀘어라면… 그 당시 벨은 메이드가 아니었을 텐데요.
카넬리아 님을 만났을 때 어땠나요?
벨 리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어.
클레어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다고요?
벨 리스
어, 언니? 진짜 언니야?
카넬리아
아, 낙엽 청소를 부탁한 분이군요.
그런데… 아직 작업이 덜 되어 보이네요.
벨 리스
언니! 나 벨-
카넬리아
캔들 스퀘어의 정문은 방문객이 처음 마주하는 캔들 스퀘어의 얼굴이랍니다.
부디 빠트리는 부분 없이, 꼼꼼하게 부탁드립니다.
클레어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느낌은 아니었던 거군요?
벨 리스
응. 마치 나라는 존재를 동생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느낌이었어.
클레어
그렇군요. 어쩌면 그것도 지금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힌트가 될 수 있겠어요.
...근데...
벨 리스
...왜, 왜 그렇게 봐?
클레어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언니의 명령은 고분고분 따르는군요. 심지어 자길 못 알아보는데도요.
벨 리스
시, 시끄러워!
왠지…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단 말이야...
클레어
알 것도 같네요. 업무 지시를 내리는 카넬리아 님의 목소리는 언제나 부드러웠지만…
그 말에는 분명,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 지시를 따르도록 하는 힘이 담겨 있었죠.
저는 늘 그런 모습을 닮고 싶기도 했고요.
벨 리스
흥, 그래. 매일 화내면서 윽박지르는 누구랑은 완전 다르긴 하지.
클레어
네네, 저는 아직 훌륭한 메이드장이 되기에는 한참 모자란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누구처럼 간단한 일을 맡겨도 농땡이 칠 생각만 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벨 리스
으, 으윽.
클레어
...후우. 어쨌든,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잠깐 머리 좀 식혀보죠.
정황상으로는 캔들 스퀘어의 과거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진짜로 시간을 거슬러서 과거로 온 것인지는 확실치 않아요.
꿈이나 환영을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과거인 것처럼 꾸며진 세계에 들어온 것일 수도 있죠.
이곳이 어딘지, 어떻게 현실로 돌아가야 할지...
지금 우리가 가진 얄팍한 단서만으론 도출해 내기 어렵군요.
그래서-
벨 리스
...일이 끝나면 로비로 돌아오라는 말.
그 얘기를 꺼내고 싶은 거지?
클레어
...네, 그겁니다.
그 역시 카넬리아 님의 지시였으니, 충실히 수행 해보는 거죠.
벨 리스
클레어치곤 너무 일단 해보자는 식의 계획 아니야?
클레어
저라고 늘 계산과 결과에만 집착하는 건 아닙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지금 같은 때에는 유연성도 필요한 법이죠.
벨 리스
말은 잘하네.
...어쩔 수 없이 어울려 줄 수밖엔 없겠지만.

클레어
그렇게 툴툴대면서 벌써 어느 정도 끝내셨군요.
늘 투덜거리고, 표독스럽고, 어처구니없이 비싼 돌을 자꾸만 사는 데다, 꼭 혼나야만 끝나는 게 문제긴 하지만...
맡은 일은 항상 끝내 놓긴 하는 게 벨의 장점이죠.
벨 리스
시, 시끄러워! 나도 사정이라는 게 있는 거라고!
그리고 그거 욕이야, 칭찬이야!?
클레어
흐음, 어쨌든 저희 둘 다 마무리했으니 돌아가면 되겠군요. 해도 저물고 있고요.
벨 리스
...쳇, 들은 체도 안 하잖아?
그런데, 생각보다 과거도 별반 다를 건 없네.
나는 언니가 메이드장이던 시절은 잘 모르지만, 지금 보니 대부분의 풍경이 똑같아.
클레어
확실히, 크게 달라진 것은 없을 겁니다.
구원자분들이 수없이 드나드는 특성상 많은 것을 바꿀 수도 없었을뿐더러-
너무 많이 바뀌어 버리면, 돌아온 사람 입장에선 어색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벨 리스
별걸 다 신경 쓰네. 하여튼 참 피곤한 성격이야.
클레어
시끄러워요. 빨리 올라가서 문이나 여세요.

벨 리스
...응? 뭐야.
...나, 분명 정원에서 로비로 이어지는 후문을 열지 않았어?
클레어
...네. 분명 그랬는데...
여긴... 훈련장 아닌가요?
메이드
거기 2명, 아침부터 뭘 그렇게 떠드는 거죠?
벨 리스
아침?
메이드
자, 오늘 업무는 훈련장 청소부터 시작이에요. 나중에 검사하러 올 때까지 깨끗하게 닦아두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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