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것들을 위한 소나티네 · 챕터 6
낙화

청장미자매회라는 이름 아래에 모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이크 호그를 타고 라비스타의 모든 땅을 밟겠다고 호기롭게 이야기하던 폭주단이죠.
물론 지금도 어딘가에선 질주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황금기는 과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푸른 장미의 가시넝쿨이라고 불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청장미자매회 멤버 A
리더! 오늘은 길을 개척해 보는 게 어떻슴까!
청장미자매회 멤버 B
오오, 그거 좋슴다! 몸이 근질근질함다!
늘 그랬듯, 그날도 달리는 것 하나만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계획과도 같았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 어딜 향해 달릴까... 라는 단순한 목표뿐이었죠.
내일같은 것은 머릿속에 없었습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내일에 대한 기대를 버린 사람들이었기에, 오늘만을 향해 달리는 무모한 폭주에 빠져든 것이겠지요.
물론, 그날은 유독 새로운 길이라는 리스크를 짊어졌던 거고요.
벨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익숙하지 않은 길을 달리는 건 생각보다도 위험한 일입니다.
속도가 붙은 상황에서는 낯선 길의 모든 것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다만 그 변수를 파훼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스릴이, 기꺼이 리스크를 지게 만드는 겁니다.
청장미자매회 멤버 A
어어...? 얘들이 왜 이래!
청장미자매회 멤버 B
리, 리더! 바이크 호그들이 이상함다!
청장미자매회 멤버 A
히익!? 고, 공허체다!
청장미자매회 멤버 B
다들 위험하니까 물러나!
하지만, 그들은 오만했습니다.
새로 개척해 질주할 곳이 어떤 곳인지, 자신들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알지 못했으니까요.
청장미자매회 멤버 A
리더! 공허체들의 수가 너무 많슴다!
애들도 많이 다쳤고... 호그들도...!
내 사람들이 다치고, 쓰러지고, 신음을 내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함.
고작 달리는 것이 좋았을 뿐인 날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다는 허탈함.
리더는 아마도... 절망에 빠져 최악의 얼굴을 하고 있었겠죠.
어딘가 쓸쓸하고 텅 빈 온도의, 그림자에 가까운 그 빛을.
...그리고, 그 온기를 마주하기 전까지는요.
???
괜찮으신가요?
...꽤 많이 다치셨네요.

???
이 앞은 저희에게 안심하시고 맡겨주세요.
캔들 스퀘어의 메이드가, 여러분들을 돕겠습니다.
메이드들이 왜 이곳까지 왔을까.
메이드들은 무엇을 하는 걸까.
앞으로 어떻게 될까.
푸른 장미의 가시넝쿨은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멍하니, 구원자라는 이름처럼 모두를 구원하고 있는-
그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메이드
카넬리아 님, 공허체의 규모가 당초 저희가 파악한 범주를 상회하는 듯 합니다.
이대로 작전 속행할까요?
카넬리아
그렇게 하죠. 폴라리스에는 알려 두었나요?
메이드
네. 궤도 수색대의 관측사들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도착까지는 약 8분 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카넬리아
8분이라...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우선, 이분들의 안전을 먼저 확보해야겠네요.

카넬리아
캔들 스퀘어의 메이드들은 들으세요.
목표지는 전방의 능선 너머, 구급조가 대기하고 있는 지점입니다.
호송 간에는 공허체들과 교전을 가급적 피하고, 돌파보다는 방어에 주력하세요.
해당 위치까지 이동 후, 궤도 수색대 분들과 합류할 때까지는 버텨야 합니다.
앞장설 테니, 준비되신 분들은 제 뒤를 따르도록 하세요.
출발하죠.
긴 밤의 끝에, 여명이 있기를.

청장미자매회 멤버 A
...무, 무슨... 제가 뭘 본 검까...?
청장미자매회 멤버 B
굉장함다...! 저 완전 반했슴다!!
카넬리아
이걸로... 얼추 정리된 것 같군요.
그쪽은 어떻죠?
메이드
저희 쪽도 관측사분들과 함께 토벌을 마쳤습니다.
이 정도라면 일대에서 공허체가 등장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습니다.
카넬리아
다행이군요. 관측사분들께서도 고생하셨습니다.
폴라리스 관측사
아닙니다. 원래라면 저희가 해야 할 일이었는데요.
순식간에 기하급수적으로 개체가 늘어난 탓에, 저희 측에서도 관측이 늦었던 건이었는데...
저희보다 훨씬 먼저 움직여서 선제 조치를 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메이드장님께서 직접 토벌대를 이끌고 와주실 줄이야...
카넬리아
후후,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협조해 드리죠.
그럼 저희는... 민간인 분들과 함께 먼저 복귀하겠습니다.
폴라리스 관측사
아, 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공허체들이 모두 정리된 후, 캔들 스퀘어의 메이드들도 각자의 위치에 재배치되었습니다.
캔들 스퀘어의 업무로 복귀하거나, 현장에 남아 잔존 위험 요소를 확인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청장미자매회 일원들을 병원으로 호송하는 임무를 맡았죠.
청장미자매회 멤버 A
어... 저희를 병원까지 데려다주시는 검까? 완전 바쁘신 거 아님까?
카넬리아
후후, 괜찮답니다. 캔들 스퀘어에 저 말고도 유능한 메이드들은 많으니까요.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끝까지 챙겨드리는 것이 메이드들의 의무이자 덕목이기도 하고요.
다만, 송구스럽게도 캔들 스퀘어의 의무실은 자리가 많지 않아서...
저희 선에서 협조가 가능한 가장 좋은 병원으로 안내해 드리려고 합니다.
메이드장, 카넬리아 리스. 리더의 머릿속에는 그 이름이 잔상처럼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리더는 내일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일개 폭주단의 리더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감각이었죠.

클레어
그리고 그 리더는...
벨 리스
어느 날 갑자기 캔들 스퀘어로 찾아와, 카넬리아 리스를 만나게 해달라고 말하더니-
그토록 찾던 메이드장을 만나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맞지?
클레어
...
소문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그렇게 당부했었는데... 효과가 없었던 것 같군요.
벨 리스
사실 나도 들은 얘기라 잘 몰라. 정확한 건 당사자만 알겠지.
클레어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차피... 다 알고 계신 것 같으니까요.
벨 리스
이후에 그 시절이 그리웠던 적은 없어?
아니면, 캔들 스퀘어의 메이드가 된 걸 후회한 적이라거나.
클레어
...그리웠던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스치는 바람의 향기나, 빠르게 뛰는 심장의 박자나... 그런 것을 잊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요.
지금처럼 책임과 선택을 피할 수 없는 삶보다는, 훨씬 단순하고 원초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클레어
역시,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카넬리아 님을 보며 그렸던 리더의 미래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모습과 크게 달라질 리 없을 테니까요.
벨 리스
...진짜 바보 같아.
클레어
그거, 벨이 얘기할 땐 칭찬 아닌가요?
벨 리스
시끄러워.
공주에게 반한 왕자님 이야기 같아서 오글거리던 참이었으니까.
클레어
누, 누가 그런...!!
벨 리스
…흐음, 그럼 클레어는 언니와 면담을 하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나눴던 거야?
클레어
아마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만…
벨 리스
뭐~? 아마? 다른 건 다 기억하면서…!
클레어
…하아. 드릴 말씀이 없군요. 카넬리아 님과 대화하면서 많이 긴장해 있었기도 했고…
그리고… 카넬리아 님과의 면담이 있었던 바로 다음 날.
카넬리아 님께서 캔들 스퀘어에서 사라지셨으니까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혼란스러워하고, 한동안 상황을 정리하느라 정신없었거든요.
벨 리스
언니가 사라지기 바로 전 날…
...…
…클레어? 만약 우리가 과거의 일을 그대로 겪고 있는 거라면-
클레어
벨도 제가 추측하던 것과 비슷한 결론에 닿았나 보군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검은 책 안으로 들어와서 겪고 있는 이 상황.
이 상황이 실제 시간의 이동이 아니라, 기록의 경험이라면-
벨 리스
…검은 책은 언니의 일기장이었다…?
클레어
네, 또는 카넬리아 님께서 남겨두신 캔들 스퀘어의 업무 일지 같은 것일지도 모르죠.
지금까지 며칠분의 경험이 진행되었지만 일과 후의 경험은 없었어요.
또한 당시에는 벨이 캔들 스퀘어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이 경험의 세계에서는 존재 자체가 인식되지 않는 거겠죠.
벨 리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상황이 말이 되는 것 같긴 한데…
자, 잠깐!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해야 나갈 수 있는 거야?
이대로 과거의 매일 매일을 그대로 경험하면서 언니의 마지막 기록까지 도달해야해?
클레어
이대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이 세계가 카넬리아 님께서 남긴 기록이라고 가정하고, 우리가 겪고 있는 시퀀스들이 그것의 재현이라면...
여러 장의 페이지를 넘기듯이, 특정한 날의 기록으로 건너뛸 수도 있지 않을까요?
꼭 한 페이지씩 책장을 넘기란 법은 없으니까.

클레어
…좋아요. 이 안에서 검은 책을 찾아보죠.
벨 리스
책 속의 책을 찾아서 페이지를 넘겨보자니… 황당한 발상 같긴 한데…
클레어
그럼 앞으로 몇 개월간의 캔들 스퀘어 메이드 일을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뭐, 벨에게는 기초부터 메이드의 업무를 다시 교육할 절호의 기회가 될 테니 전 딱히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벨 리스
찾을게! 빨리 찾자!
그런데 왜 언니의 집무실에서 찾는 거야? 현실에서 책이 나타난 곳은 장서관이잖아?
클레어
사적인 기록이든, 공적인 기록이든... 카넬리아 님께서 개인적으로 기록하신 책자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장서관에 보관해 두셨을 리는 없어요.
무엇보다, 장서관은 바로 얼마 전에 둘이 함께 정리하며 모든 도서 목록을 확인해 봤잖아요?
벨 리스
그랬지. 검은 책이 있었다면 바로 알아봤을 거야.
그러면… 책은 원래 집무실에 있었다?
클레어
카넬리아 님께서 사라지시고, 집무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장서관으로 이동하고…
…도서 분류 확인 이전에 사라졌다가, 다시 그 자리에 나타났다.
그런 흐름이 아닐까 싶군요.
벨 리스
하아… 언니가 집무실에 탐지 마법 같은 건 걸어두지 않았겠지...
…어?
클레어
찾았나요?
벨 리스
응. 책상 서랍을 열었더니… 바로 들어 있었어.
…
…어쩌면, 철저히 숨기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지도…
클레어
네? 뭐라고 하셨죠?
벨 리스
아, 아무것도 아냐! 그럼 책의 봉인을…
어라? 그냥 열려 있어?
클레어
이건…
벨 리스
언니의 글씨로 쓰여 있어. 우리가 생각한 게... 맞는 것 같네.
클레어
후우, 적어도 책 속의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은 없었군요.
뒤쪽으로 넘겨보면…
벨 리스
…뭐, 뭐지? 이 진동은…?
클레어
아무래도…
빙고 같네요.

클레어
…정원 대청소… 마구간 정리… 메이드 소양 교육…

클레어
…구원자 지원… 폴라리스 정기 회의… 외부 출장… 그리고…
…
메이드 면담.
도착한 것 같군요.
벨 리스
진동이… 멈췄어.

벨 리스
페이지가 바뀐거겠지…?
클레어
그렇기를 바라야죠. 분명 효과가 있을 거라고-
메이드
실례합니다.
클레어
히꺄아악-!?
메이드
...? 제가 놀라게 해드린 건가요?
벨 리스
...히꺄아악...?
클레어
크, 크흠!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메이드
카넬리아 님께서 클레어 님을 면담 차 호출하셨습니다.
클레어
지금 카넬리아 님은 어디 계시죠?
메이드
메이드장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클레어
준비 후에 바로 가겠습니다. 카넬리아 님께 전언 부탁드립니다.
메이드
네, 그럼.
벨 리스
...클레어.
클레어
...네. 아무래도-
차 한 잔을 할 시간이 되었나 보군요.
스토리 및 일러스트 © Studio B-Side. 비공식 열람용 아카이브입니다 — 문의나 요청은 사이트 소개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