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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R

검은 설원과 불협화음의 듀엣 · 챕터 8

다름과 틀림의 차이

선임 메이드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겨우 두 분이서…

공허의 은총을 받은 메이드 수십명을 상대로 이 정도로 버티다니.

트리쉬

크읏…!

선임 메이드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습니다.

이미 주변에 공허의 파편을 충분히 깔아 뒀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공허의 은총이 두 분께도 스며들겠지요.

그렇게 되면… 곧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에밀리

…도대체 뭘 꾸미고 있는 겁니까 당신.

선임 메이드

어라? 공허의 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로 돌아오신 건가요?

후후후. 이건 또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네요.

트리쉬

아까부터 공허니 뭐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선임 메이드

그야 당연히…

공허의 별에 관한 이야기랍니다.

여러분은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고 계신가요?

우주는… 공허에서 태어났습니다.

텅 빈 공허가 잉태한 생명의 불꽃은 화려하게 타올라 천지를 밝혔지만-

이젠 다시금 공허로 돌아갈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저 억지로 멈춰진 우주의 순리를 다시금 흐르게 하려는 자.

작은 깨달음을 얻은 공허의 신실한 순종자에 불과하지요.

트리쉬

무슨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거야?

공허의 별이 뭐? 그 죽은 별이 지금 이 상황이랑 무슨 상관인데?

선임 메이드

후후… 상관이 있죠.

저 괴석이 바로 공허의 별의 일부니까요.

트리쉬

뭣…?

선임 메이드

그리고 저 검은 돌들은 그 파편입니다.

스러져간 별 파편은 그 자체로 훌륭한 공허의 전도자.

파편에서 흘러나온 공허의 은총은 어리석은 인간을 올바른 길로 이끌죠.

그러니 지금 칼라이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모든 것이 바로잡혀가는 과정일 뿐이랍니다.

트리쉬

으으… 갑자기 뭔 소릴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요약하면 저 돌에서 흘러나온 불길한 힘으로 사람들을 이상하게 만들 거다.

그런 말이잖아 지금? 칫, 정신 나갔군.

선임 메이드

후후… 그러게 조용히 보내 드릴 때 조용히 떠나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왜 굳이 험한 꼴을 보러 오신 건지…

저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군요.

에밀리

캔들 스퀘어의 선임 메이드로서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구원자와 시민을 돕기 위해 힘쓰지 못할 망정, 오히려 이런 음모를 꾸미다니!

선임 메이드

부끄러워요? 구원자와 시민을 도와야 한다구요?

제가 왜요?

에밀리

그야 당연히-

선임 메이드

캔들 스퀘어의 메이드니까?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속여오셨습니까?

에밀리, 가슴에 손을 얹고 되돌아보시죠.

정말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메이드가 되었나요?

혹시 다른 원인이 있지는 않았나요?

에밀리

다른 원인 같은 건 없습니다!

그저 받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선임 메이드

정말, 그런가요?

그런 거창한 이유를 잊고 즐기신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나요?

에밀리

…!

선임 메이드

후후후…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어요.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

인간이란 결국 자기 욕망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죠.

공허의 힘은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힘 같은 게 아니랍니다.

그저 인간의 가면을 한 꺼풀 벗겨줄 뿐.

두꺼운 가면이 벗겨진 인간에게 남는 건-

욕망.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불신, 갈등, 다툼, 실패, 체념…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셨죠?

전 이 세상을… 라비스타 전체를 구원할 겁니다.

그리고 구원의 시작은 이곳, 칼라이드에서 시작하게 되겠죠.

에밀리

헛소리…! 당신이 하려는 짓은 혼돈과 절망만 가득하게 만들겁니다!

선임 메이드

어머, 정확하게 제가 원하던 거네요.

혼돈과 절망… 그 끝에는 공허가 있죠.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그 본질은 결국 공허에 이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반항은 그만두고, 공허의 힘을 받아들이는 편이 좋아요.

으음… 아니지. 오히려 조금 반항해주는 편이 좋을지도요.

여러분 정도의 구원자라면…

공허의 은총을 강하게 받아 집행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참에 한 번 시험해보도록 할까요?

트리쉬

집행자…? 그게 뭔데…?

선임 메이드

어머, 그 정도는 스스로 찾아보시는 게 어떨까요?

후후. 그럴 기회가 있다면 말이에요.

그럼…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만.

트리쉬

야! 야앗-! 너 거기 서!

선임 메이드

얘들아, 잠시 재워 드리렴.

빗자루를 든 메이드

어… 응…

에밀리 & 트리쉬

읏…!

트리쉬

후우! 결국 이렇게 됐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에밀리

글쎄요.

정신을 잠깐 잃은 동안, 그 괴석을 옮긴 것 같군요.

아마… 대대적으로 뭔가 일을 꾸미려는 게 아닐까요?

트리쉬

이제 숨길 필요도 없다 이거네.

…있지 에밀리. 아까 그 녀석이 한 말, 허풍은 아니었나봐.

이 찐득한 검은 기운이 들러붙을 때마다, 힘이 빠져나가는 기운이야.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무겁게 느껴져.

에밀리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대로라면… 결국 저희도 공허의 꼭두각시가 되어 움직이게 되겠죠.

여기 쓰러져 있는 사람들처럼.

…모두 제 탓입니다.

제가 바보 같은 계획을 짜지 않았더라면-

트리쉬

…아니야.

내가 네 말대로 조금만 더 침착하게 굴었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 거야.

에밀리

아뇨. 제가 없었다면 트리쉬는 애초에 이번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을 겁니다.

트리쉬

아하하! 그렇게 따지면 내가 너한테 웬디고를 잡으러 가자고 한 것부터 문제인걸?

에밀리

그때 헤어졌어도 어차피 칼라이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건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지금쯤이면 벌써 검은 돌에 홀려 있었을지도 모르죠.

트리쉬

아하하! 이럴 때 정돈 양보 좀 해줄래?

기껏 죽기 전에 멋있게 사과하고 가고 싶었던 건데 말이야.

일류 헌터 특! 마지막 장면조차 눈물 나게 멋있음…!

에밀리

후후. 그러고 보면 저희, 정말 마음이 안 맞는군요.

트리쉬

맞아. 하나부터 열까지 전혀 다르지.

그래도 싫지는 않았어.

아, 사사건건 잔소리할 땐 좀 짜증나긴 했지만!

에밀리

저도 싫지는 않았습니다.

멋 때문이라느니 하며 경솔하게 움직일 땐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트리쉬

아하하! 그럼 비긴 거네.

에밀리

그런 걸로 하죠.

트리쉬

후후…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거라곤 생각 안 했는데…

에밀리

…

트리쉬

에밀리… 내가 죽거든… 묘비에 라비스타 최고의 일류 헌터였다고 남겨줘…

묘비는… 황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최고급품으로… 부탁해…

에밀리

…저도 트리쉬랑 똑같이 잡혀 있는 상황입니다만.

트리쉬

…아.

그럼 힘이 전부 빠지기 전에 유서라도 써둬야-

에밀리

트리쉬.

트리쉬

으, 응? 너도 종이 한 장 필요해?

에밀리

그게 아니라… 좀 괜찮아진 것 같지 않나요?

트리쉬

에…?

에밀리

아까보다 훨씬 몸을 움직이기 편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트리쉬

어라… 정말이네?

저 돌무더기에서는 아직도 어두운 기운이 줄줄 흐르고 있는데…?

에밀리

트리쉬… 이거…!

트리쉬

엇?! 그때 샀던 멋있게 생긴 부적!

에밀리

어두운 기운들을… 이게 전부 흡수하고 있군요.

트리쉬

이거… 진짜 효과 있던 거였네?

그 수상한 행상인, 분명 허풍 떨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에밀리

…그걸 알면서도 샀던 건가요?!

트리쉬

뭐? 보기엔 멋있게 생겼잖아! 실제로 효과도 있고.

잠시만 기다려. 미리 챙겨둔 다용도 칼이 분명 주머니에 있었어.

좋아. 에밀리, 이리와 내가 풀어줄게.

부스럭

에밀리

음? 이미 풀었습니다만.

용병단 시절 배워둔 포박술 대응법이 도움이 되었군요.

트리쉬

…아. 응. 그렇구나. 너는 너대로 방법이 있었구나…?

…그래. 맞아. 그렇네.

…풉! 푸핫! 푸흐흐흐!

에밀리

트리쉬? 갑자기 왜 웃으시는 겁니까?

트리쉬

아하하하하! 우리, 지금까지 뭘 하고 있던거야?

에밀리

네…?

트리쉬

우리는 분명히 서로 달라.

원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생각하는 방식도.

하지만 그게 뭐?

헌터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어.

헌터가 세 명이면, 덫 놓는 방법은 여섯.

원랜 서로 자기 방식이 맞다고 싸우다가 결국 덫을 하나도 만들지 못한다는 의미인데-

처음 이 말을 만든 사람, 바보 아니야?

방법이 여러가지면 전부 해보면 되는 거잖아.

그럼 서로의 장점을 전부 쓸 수 있게 될 거 아니야!

둘 중 누군가의 방법이 틀린 게 아니야.

어쩔 땐, 둘 다 맞을 때도 있는 거야.

이 부적만 해도 그래.

멋있다고 산 건 나인데…

정작 나는 귀찮아했고, 챙겨가자고 한 건 에밀리 너였지.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이 상황이고.

뭔가… 웃기지 않아? 지금까지 바보짓을 한 것만 같아.

에밀리

…저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

흐음…

…정확한 말은 까먹었습니다만.

아무튼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단점을 보완하면 강한 팀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였죠.

옛날엔 당연한 이야기를 왜 그렇게 거창하게 하나 했었는데…

이젠, 그 의미를 조금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이제 트리쉬는 어떻게 할 건가요?

트리쉬

어떻게 하냐니… 그야 당연하지.

내가 구해주지 않으면 칼라이드 전체가 어둠에 물들고 말 거라고…!

일류 헌터 트리쉬가 등장하는 것밖엔 해결책이 없는걸!

에밀리

후후… 그렇긴 하네요.

후우… 모든 걸 걸고 펼쳐지는 마지막 결전…

하아… 하아… 어쩔 수 없군요.

트리쉬

응. 어쩔 수 없네.

스토리 및 일러스트 © Studio B-Side. 비공식 열람용 아카이브입니다 — 문의나 요청은 사이트 소개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