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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R

검은 설원과 불협화음의 듀엣 · 챕터 5

검은 설원의 음모

트리쉬

으으… 아야야… 아파라.

에밀리

크읏… 트리쉬, 무사한가요?

트리쉬

으응… 여기저기 아프긴 하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아.

에밀리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목숨은 건진 것 같군요.

트리쉬

그런데… 여긴?

에밀리

동굴… 인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산사태에 휘말려 여기까지 쓸려왔나 봅니다.

트리쉬

치잇… 하필이면 산사태가 일어날 게 뭐야? 운도 지지리 없지 정말…

에밀리

…운이 안 좋았다기보단, 자초했다고 보는 편이 맞겠죠. 트리쉬가.

트리쉬

내, 내가? 지금 이게 전부 나 때문이라는 거야?

에밀리

잘잘못을 굳이 따지려 든다면 그렇겠죠.

트리쉬의 공격에 웬디고가 낭떠러지에서 굴렀고-

그 탓에 쌓여있던 눈이 충격을 받았잖습니까.

왜 그렇게 요란하게 공격하신 겁니까?

갓 내린 눈이 쌓인 곳에서는 작은 움직임도 조심하면서 싸워야 한다고 경고했는데…

뭔가 제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던 건가요?

트리쉬

다, 당연하지!

에밀리

어떤 이유 때문이었죠?

트리쉬

그, 그건…

그야… 멋있잖아!

에밀리

…

트리쉬

뭐! 왜 그런 눈빛으로 봐?! 멋있는 걸 추구하는 게 어때서!

에밀리

그게 전부인가요? 비효율의 극치입니다.

전투에서 패배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어리석은 짓으로 팀원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건 하수입니다!

특히나, 곰이 앞발을 휘두를 때 정면 돌파를 시도한 건 무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 오른 다리가 뒤에 있었기 때문에 무게 중심이 뒤로 가 있었던 덕에 간신히 피했지만-

한 걸음만 스텝이 꼬였어도 그대로 치명상을 입었을 겁니다.

트리쉬

치잇…! 아, 알았다고. 내가 뭐 알고 그랬나? 그 녀석이 하필이면 그쪽으로 날아갈 줄은…

에밀리

몰랐겠죠. 하지만 그건 변명이 되지 못합니다.

항상 전장의 상황을 고려해서 전투의 흐름을 유리하게 만드는 것.

훌륭한 전투원의 기본 소양이죠.

제가 트리쉬였다면 아마 절벽 끝에 있던 나무를 이용했을 겁니다.

나무의 상태로 보아 뿌리가 깊게 박혀 있을 거라 추측할 수 있었죠.

가방에 들어있던 그물망으로 나무와 오른쪽에 있던 바위틈을 이용해서 이렇게…

상대의 움직임을 역이용했다면 손쉽고 안전하게 포획할 수 있었을-

트리쉬

…에밀리.

에밀리

네? 왜 그러시죠?

트리쉬

…너, 묘하게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아? 자주 깜빡거린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어?

에밀리

…어라?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뭔가… 머릿속 안개가 깔끔하게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트리쉬

아무튼! 알았으니까 일단 돌아갈 방법이나 생각해보자고.

으으… 분명 가방에 나침반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가 있던 설원이 칼라이드로부터 북서쪽이었으니까…

에밀리

트리쉬.

트리쉬

응? 뭐야, 나침반 찾았어?

에밀리

그게 아니라…

어쩐지 기뻐하지 않으시네요?

웬디고, 잡고 싶어하시던 거 아니었나요?

트리쉬

아아… 그거 말이지?

으음… 분명, 잡긴 잡은 건데…

정작 웬디고를 잡았다는 증거는 눈사태에 휩쓸려서 찾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생각해 볼수록 뭔가 조금 이상하단 말이지.

에밀리

이상하다구요?

트리쉬

응. 이거 한번 볼래?

에밀리

이건 그냥… 까만 돌멩이 아닌가요? 이게 무슨…?

트리쉬

마지막 한방을 날리면서 웬디고의 목덜미에 박혀있던 게 빠져 나온거야.

에밀리

목덜미에 그 돌이 박혀있었다구요?

트리쉬

응. 그리고… 처음에 발견했을 땐 저건 웬디고가 분명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조금 이상한 거 있지?

어쩌면 그거, 진짜 웬디고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에밀리

…네?

그렇지만… 그 괴물은 트리쉬가 말했던 그대로였는데요.

거대한 뿔, 빛나는 눈, 땅을 울리는 포효까지…

트리쉬

응 맞아. 하지만 일류 헌터의 직감이 자꾸 경고를 울리고 있거든.

뭔가 이상하다고 말이야.

싸울 땐 몰랐는데, 쓰러뜨리고 보니 생김새도 묘하게 곰이랑 비슷하고…

흠! 그렇다고 좀 특이하게 생긴 곰이었다고 하기에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야.

칼라이드 곰은 생긴 것과는 달리 온순하거든.

자기 영역인 동굴에 들어오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지 않아.

그런데 그 녀석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달려들었잖아?

에밀리

…그 검은 돌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트리쉬

겨우… 이런 돌멩이 하나 때문에?

카넬리아

정신이 조금 드셨나요?

눈에 젖어서 추우실 텐데. 몸 좀 녹이시죠.

에밀리 & 트리쉬

…?!

에밀리

누구…시죠?

카넬리아

저 말인가요? 으음…

쉽게 설명하자면… 눈사태에 휩쓸려 떠내려가던 당신들을 건져낸 사람…이라고 하면 답이 될까요?

위험할 정도의 눈사태였는데, 다행이네요.

조금만 늦었다면 두 분 모두 이미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져서… 시신 수색조차 불가능했을지도요.

에밀리

건져 냈다…고요?

눈사태에 휘말려 내려온 게 아니라 떠내려가던 걸 직접 구하셨다는 얘기인가요?

보통 사람이라면 가까이 접근하기조차 어려웠을 텐데요.

카넬리아

…

…후후. 역시 캔들 스퀘어의 메이드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되었군요.

그쪽은 특히나… 날카롭게 날이 서 있네요.

에밀리

…당신, 누구시죠?

카넬리아

그렇게 경계하실 필요는 없답니다.

저는 그저… 지나가던 메이드일뿐이니까요. 당신과 마찬가지로.

트리쉬

이런 곳을… 혼자 지나가고 있었다고…? 메이드한테는 평범하게 있는 일인 거야…?

에밀리

흐음…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칼라이드의 메이드에게는 드문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메이드로서 갖춰야 할 덕목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에.

마치, 환경에 따라 전술 교리가 유연하게 바뀔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트리쉬

호오… 메이드라는 거, 생각보다 멋있는 직업일지도 모르겠는데…!

카넬리아

…납득하셨다니 다행이네요.

아무튼, 날씨 때문에 일정이 많이 지체된 상황인지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출발했는데, 이렇게 우연히 여러분들을 도울 수 있게 된 거랍니다.

…운이 좋았죠.

에밀리

…그렇군요. 어쨌든,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카넬리아

딱히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답니다. 그저…

무고한 생명이 빛을 잃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삶이란 소중한 거니까요. 그렇죠?

트리쉬

흐음…? 그… 그렇지? 그야 당연히… 그런거지?

뭐, 아무튼 고마워! 덕분에 목숨을 건졌네.

아, 맞다! 그건 그렇고 혹시 이 돌-

앗! 떨어졌다…!

에밀리

음… 충격에는 큰 반응이 없어 보이네요.

트리쉬

이상하네…? 분명 떼어낼 때는 번쩍! 하고 빛이 났던 것 같은데.

에밀리

돌이라면, 벨 님이 뭔가 알고 계실지도 모릅니다만…

당장 연락할 방법이 없군요. 아쉽습니다.

카넬리아

벨… 이라. 그분이 돌에 대해서 잘 아는가 보죠?

에밀리

그렇습니다. 캔들 스퀘어 NOA 지부의 선임 메이드 중 한 분이시죠.

카넬리아

…후후. 그렇군요. 선임 메이드 벨, 이라…

에밀리

네, 제가 뭔가를 잊거나 까먹을 때마다 혹독하게 정신을 차리게 해주시는 분이지요.

돌에 대해서도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계셔서…

여러 상황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암석 같은 걸 알려주시기도 했구요.

덕분에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데…

아, 아니. 캔들 스퀘어의 메이드 일을 하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벨 님과 아는 사이신가요?

카넬리아

그럴리가요. 단지… 그 돌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어서요.

저라면, 그 돌을 가까이 두지 않을 겁니다.

트리쉬

엣…? 뭔가 위험한 물건인 거야?

카넬리아

…후후. 글쎄요.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릅니다만.

지금까지 칼라이드에서 일어난 모든 이상한 일들.

그리고 이제부터 일어날 무서운 일들.

그건 아마도, 전부 그 검은 돌 때문이 아닐런지요.

에밀리

칼라이드에서 일어난 모든 이상한 일들이라니…

웬디고 이외에도 다른 일이 있다는 건가요?

카넬리아

어머,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칼라이드 전역에 드리운 이상한 기운을?

트리쉬

그러고보니… 사람들이 조금 이상해 보이긴 했지?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카넬리아

그리고 캔들 스퀘어의 메이드라면… 칼라이드 지부에 방문하셨던 것 아닌가요?

그곳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못 느끼셨나요?

뭔가 숨기는 것 같은 기색이라거나?

에밀리

숨기는 것 같은…

…어랏? 아아…!

늦었지만 기억났습니다.

트리쉬, 이 돌… 본 적이 있습니다.

트리쉬

어…? 언제…?

에밀리

그런데… 저 돌들은 뭔가요?

선임 메이드

아아, 복구 작업에 쓸 재료들입니다.

쌓인 눈에 이곳 저곳 고쳐야 할 곳이 생겨서요.

에밀리

반짝거리는 광택과 날카로운 모서리, 가만히 보고 있으면 느껴지는 탁한 기운까지…

분명 캔들 스퀘어에서 봤던 그 돌입니다.

트리쉬

아…?! 그치만 분명 폭설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자재라고 하지 않았어?

카넬리아

피해 복구라. 후후… 그 메이드가 그러던가요?

그 검은 돌을 처음 발견한 건, 설원을 탐사하던 한 개척단이었다고 했어요.

북서부 대설원의 탐색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특이한 돌.

그리고 함께 발견된, 커다란 알처럼 생긴 괴석.

처음엔 다들 별것 아닌 고대 유적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던 거예요.

광택이 아름답다면서 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단원 하나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는군요.

트리쉬

이상 행동?

카넬리아

대설원 한복판에서 옷이 무겁다며 외투를 집어 던지거나…

목이 마르다면서 눈을 퍼먹는다거나…

혹은 정말 사소한 이유로 화를 내기도 했다더군요.

데리고 다니던 개들까지 포악하게 변해서 팀원들을 공격했구요.

서둘러 칼라이드로 복귀한 개척단이 시 정부와 캔들 스퀘어에 그 정보를 공유했죠.

에밀리

캔들 스퀘어를 통하면 다른 구원자들에게도 빠르게 위험성을 알릴 수 있으니까요.

카넬리아

네. 하지만… 그게 실수일줄은 아무도 몰랐던 거죠.

에밀리

실수라니, 어째서죠?

카넬리아

구원자들에게 위험성을 경고한다는 명목으로 비석과 돌을 수거해간 다음부터…

캔들 스퀘어의 태도가 완전히 뒤바뀌었어요.

캔들 스퀘어에서는, 위험물을 수거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돌을 모으기 시작했죠.

칼라이드에서 활동하던 구원자들도 의뢰라는 이름 하에 수색에 동원되었구요.

물론 칼라이드 설원의 전문가들인 개척단도 예외는 아니었죠.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도망치려던 단원들도 있었지만…

모두 머지않아 캔들 스퀘어에서 보낸 메이드들에게 붙잡혔어요.

그들 모두… 그 이후로는 얼굴을 볼 수 없어졌답니다.

트리쉬

그… 그런 일이 있었다고…?

에밀리

당신은…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전부 알고 있는 거죠?

카넬리아

캔들 스퀘어에는 알고 있는 메이드 지인이 있어서요.

제가 칼라이드에 머무는 동안 종종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분이 알려주었죠.

음, 그래요. 그런 일도 있고 해서 혼자서라도 서둘러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던 거죠.

에밀리

그랬군요…

대체… 칼라이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카넬리아

글쎄요. 제가 설명해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원하신다면 직접 칼라이드로 돌아가서 확인해보는 방법도 있겠지만-

으음… 전 그다지 추천해드리고 싶지 않네요.

검은 돌에 대해서 알고 있거나, 그걸 파헤치려는 사람을 그냥 두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에밀리

음… 하지만-

카넬리아

두 분이 처리한 곰에 대한 정보, 누가 줬나요?

혹시… 캔들 스퀘어의 누군가 아니었나요?

두 분이 여기에 온건, 우연이 아니에요. 전부 의도된 결과죠.

에밀리 & 트리쉬

…!

카넬리아

아마도… 돌아가면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 당신들도 쓸데없는 궁금증은 접어두고 NOA로 돌아가는 건 어떨까요?

조금이지만 눈이 녹은 길을 알고 있어요.

그래요, 삶은 소중하잖아요? 그렇죠?

살고 싶다면, 이대로 돌아가시기를 권합니다.

에밀리

…

트리쉬

…에밀리. 넌 어떻게 할 생각이야?

에밀리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 같습니다.

카넬리아

검은 돌들이 칼라이드로 흘러 들어간지 시간이 꽤나 흘렀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검은 돌의 영향에 놓이는 사람들은 계속 많아졌겠죠.

벌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검은 돌의 힘에 홀렸을지 상상해보세요.

지금쯤이면 두 분으로는 당해낼 수 없는 숫자로 불어나 있을 텐데…

정말 싸우시게요?

트리쉬

으음… 그치만…

우리가 아니면 칼라이드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괴물이 되는 거잖아?

에밀리

…그렇겠죠.

두 사람의 고민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모닥불과 함께 깊어져 갔다.

스토리 및 일러스트 © Studio B-Side. 비공식 열람용 아카이브입니다 — 문의나 요청은 사이트 소개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