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촛불과 토끼의 환영회 · 챕터 6
승부

클레어
단장님, 저런 이야기를 받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스칼렛
그래! 귀찮을 일에 휘말렸을 땐 다 때려 부수는 게 가장 쉽고 간단한 해결책이다!
용의 계곡에서도 상식이었지!
…좋아, 승부를 받아들이지.
클레어
단장님?
스칼렛
단장!
이 이상의 정면 돌파를 하게 되면 우리 쪽도 반드시 피해를 입는다.
눈앞의 경비 인력들이 전부일지, 더 증원이 가능한지도 알 수 없다.
외부에 있는 보이저 구원단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전면전이다.
난 괜찮을 거야.
뭣보다 내가 침입조에 속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니까.
게임에서 져도 우리가 잃을 건 내가 잠시 딥 필드에 머무르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기면 되잖아?
스칼렛
물론이다! 위대한 용족이 인간과의 게임에서 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
클레어
단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군요.
필사의 각오로 임하겠습니다.
우리는 각오를 굳히고 허블의 승부 제안을 받아들였다.

허블
승부라고는 했지만, 카드나 주사위 게임에 익숙하신 분은 없어 보이는군요.
이대로는 제가 너무 유리할 테니…
최대한 룰이 쉽고, 실력보다는 운이 중요한 게임으로 제안을 드리죠.
…그거 고맙군.
허블
별말씀을.
게임은 [퀸즈]로 진행하겠습니다.
스칼렛
퀸즈? 처음 들어보는데…
클레어
저도 들어본 적 없군요.
허블
그럼 [블랙 잭]이라고 하면 아실까요?
블랙 잭을 더 단순화한 게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군요.
여기 있는 카드 한 벌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룰은 아주 단순해요.
각자 한 장씩 카드를 받아서 숫자의 합이 15를 맞추거나…
그에 가장 가까운 수를 가진 사람이 이기는 거죠.
허블은 혼자, 우리 3명은 한 팀으로 맞붙는다.
게임이 시작하면 카드를 한 장씩 받고 오픈한다.
그리고 카드에 그려진 숫자를 확인한다.
에이스 카드는 1.
K, Q, J 카드는 모두 11로 처리한다.
돌아가면서 카드를 더 받고 싶다면 히트, 그만 받고 싶다면 스테이를 선택한다.
두 팀 모두 스테이를 선언하면 15에 가까운 숫자를 가진 쪽이 승리한다.
승리한 쪽이 베팅한 칩을 모두 가져간다.
받은 카드 숫자의 합이 15가 된다면 퀸즈, 자동으로 승리한다.
그리고 베팅한 칩의 2배를 상대방에게 받는다.
마지막으로 받은 카드 숫자의 합이 15를 넘어가면 버스트, 자동으로 패배한다.
그리고 베팅한 칩의 2배를 상대방에게 지급한다.
허블
…이상입니다.
클레어
…확실히, 룰은 굉장히 쉽군요.
딜러 2명이 쟁반 위에 칩을 담아와서, 절반씩을 우리와 허블의 테이블에 올렸다.
허블
칩이 먼저 떨어지는 쪽이 패배입니다.
그럼, 이제 승부를 시작하죠.
스칼렛
버스트!
또 졌잖아!
클레어
6연패… 로군요.
처음 받은 칩은 어느새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클레어
크읏…! 방금은 스테이를 할 걸 그랬군요.
스칼렛
9에서 스테이를 하면 이기기 힘들지 않느냐!
클레어
하지만 버스트 되면 2배 지불이니까…
멈추는 게 나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스칼렛
그, 그런 거냐?... 인간들의 산수라는 건 어렵구나…
클레어
확실히…
룰은 이해하기 쉬운데, 게임에 능숙해지기는 어렵군요.
경험의 차이인가…
어느 선에서 멈출 것인가, 어느 선에서 나아갈 것인가.
안전을 택할 것인가, 모험을 택할 것인가.
이 선택의 기로들 사이에서, 허블과 우리는 압도적인 경험의 차이가 있었다.
클레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만.
허블은 다음 한 걸음이 위험하다 싶으면 주저 없이 스테이를 선택했다.
15를 위해 한 발자국 더 내딛다가 터지는 건 항상 우리 쪽이었다.
허블
어때요, 재밌지 않나요?
이게 이 게임의 매력이지요.
승리라는 욕망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한 걸음만 더를 외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언제 멈춰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만이, 승리를 가져갈 수 있답니다.
스칼렛
흥, 그렇다면 네 말대로 욕망을 완전히 다스려주마!
위대한 용족은 인간들과는 차원이 다른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려주지!
5에서 스테이!!
클레어
…
…아니, 그건 한 걸음도 안 나간 거잖아.
스칼렛
또 졌다!!
클레어
그렇게 하면 당연히 지죠!!
크윽… 이대로는…
…
승부라고 했겠다…
좋아…
받아주지! 그 승부!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남아 있는 칩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도 간간이 승리를 따내긴 했지만, 상황을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곤란한데.
클레어
…단장님.
클레어를 돌아본 나는 순간 흠칫 놀랐다.
클레어
이 승부.
…맡겨주시겠습니까?
크, 클레어…?
그럴 리 없지만, 왠지 모르게 검은색 기운이 클레어의 눈과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클레어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뒤를 돌아보고 싶을 때야말로…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여기서 패배하고 단장님을 보내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단장님께 보여드리죠.
승부란 어떤 것인지!
스칼렛
…단장,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냐?
아니, 나도 모르겠어…
클레어
후우… 승부복이 없는 게 아쉽군요.
의미 불명의 말을 했지만, 클레어의 전신에서는 굉장한 투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얼굴에는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의기가 가득하다.
…좋아! 맡기겠어, 클레어!
클레어
맡겨 주시죠!
허블님, 지금부터 칩을 두 배로 올리겠습니다.
허블
좋아요. 받아들이죠.
클레어가 자신만만하게 나섰지만, 행운은 우리에게 웃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허블
후후, 8이 나왔네요. 합계는 14.
스테이 예약이군요.
스칼렛
으기약!!
클레어의 카드 합은 13.
충분히 강력한 숫자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지다니.
…라고 생각하던 그때.
클레어
…
…바람이 불어오는군요.
여기서 승부를 걸겠습니다.
히트.
허블
…네?
스칼렛
응?
뭐?
클레어
히트라고 했습니다.
한 장 더 주시죠.
스칼렛! 클레어를 막아!!
스칼렛
클레어! 뭐 하는 거냐?!
버스트 되면 2배 지불이라고!
클레어
아니요. 1이 나오면 무승부, 2가 나오면 2배 획득입니다!
여기서는, 직진뿐!
스칼렛
그렇게 편리한 일이 벌어지겠냐?!
허블
…뭐, 그래요. 다음 카드가 1이나 2가 나올 확률도 있긴 하죠.
운에 너무 기대는 플레이긴 하지만…
클레어
아니, 이건 운을 믿는 게 아니야.
왠지 모르게 클레어의 말투가 조금 바뀌어 있는 것 같았다.
클레어
운 따위에 매달리는 게 아냐!
승부는,
기세다!!
아니, 확실히 말투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허블
기… 기세…?
클레어
이미 기세에서 눌려 있으니, 승부가 성립이 안 되는 거라고!
승부란 건 결국 절벽을 향해 달리는 것이니까!
늦게 브레이크를 걸어서 절벽으로 떨어지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은, 승리를 거머쥘 자격이 없어!
필요한 건 자신을 믿고 엑셀을 당길 수 있는 용기!
절벽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 위에 올라탈 수 있는 기백!
그것이 있어야만, 질주라고 할 수 있는 거야!
나와 스칼렛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클레어를 바라봤다.
아마 허블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허블
…그, 그래요.
제 생각에 절벽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는 건…
용기가 아니라 자살 희망자의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전적으로 동감한다.
허블
본인이 선택했으니, 끝까지 가보죠.
딜러, 카드를 주세요.
딜러
네, 알겠습니다.
추가 카드, 드로했습니다.
숫자는…
말도 안 돼?!
숫자는 2였다.
스칼렛
우와아아! 클레어! 이겼어! 훌륭해!
기세…! 기세로구나! 기세가 중요했던 거구나!
허블
아니, 아니, 아니! 그럴 리가요.
이건 운이 좋았다라고 하는 거죠. 확률의 장난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운이 계속되리라 믿는 건…
클레어
운이 아니라고, 아까 말하지 않았나?
허블
안… 될…
클레어
승부는 기세야!
잘 봐 둬라.
난 앞으로도 브레이크를 걸지 않을 테니까!
스토리 및 일러스트 © Studio B-Side. 비공식 열람용 아카이브입니다 — 문의나 요청은 사이트 소개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