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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R

타오르는 촛불과 토끼의 환영회 · 챕터 5

클럽의 주인

우리는 클럽의 안쪽 복도를 향해 나아갔다.

스칼렛

복도 양쪽으로 문들이 엄청나게 많다…!

클레어

…으음, 하나하나 확인해 볼 수밖에 없겠군요.

…여긴 개인 휴게실 같은 곳인가 보네요.

스칼렛

여기도!

클레어

대부분 다 비슷하게 생겼네요.

이쪽의 방들은 모두 클럽의 회원들에게 주어진 개인 휴게실 같습니다.

나:

복도 안쪽으로 더 가보는 수밖에…

나:

…아.

복도의 안쪽에서 정장을 입은 커다란 체구의 사람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까의 경비원과 같은 옷을 입고 있지만, 풍기는 아우라가 달랐다.

관리자 직급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경비대장

무슨 일이시죠?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친절한 말투였지만 전혀 웃고 있지 않은 차가운 눈동자가 우리 일행을 훑어보는 게 느껴졌다.

스칼렛

우, 우린 그냥… 저기…

클레어

저희 주인님이 피곤하다고 하셔서, 잠시 쉴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경비대장

그런 거라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낭패다.

경비대장

…실례지만, 신사분의 성함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찾아드리죠.

홀의 경비원은 나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바니걸의 신원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명백히 나를 목표로 하고 있다.

클럽을 드나드는 회원들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처음 보는 우리들을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경비대장

…본부. 남쪽 복도에서 상황 발생.

불청객들이 들어왔다. 지원 바람.

그리고 순식간에 사방에서 달려온 경비 인원들에게 포위되었다.

클레어

좀 더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 제 실수입니다…

에밀리와 만나지 못했을 때의 플랜을 C까지만 잡은 것도…

스칼렛의 행동 패턴을 대비한 플랜을 F까지만 잡은 것도…!

너무 안이한 판단이었습니다…!

제가 더 완벽한 계획을 짰더라면…!

나:

…아냐,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해.

클레어

…결국 가장 오고 싶지 않았던 G플랜으로 와버렸군요.

스칼렛

아니, 애초에 이게 가장 좋은 계획 아니었겠느냐!

무릎 꿇고 기어다니고, 몰래몰래 움직이고 하는 건 이제 지겹다!

클레어

하아, 어쩔 수 없죠.

무력행사로 돌파하는 수밖에.

스칼렛

기다렸던 바다!

여기까지 왔으면 어쩔 수 없다.

경비대장

주인님께서는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오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이 클럽이 만들어지고 나서, 출입 통제만큼은 완벽을 기했다고 생각했는데…

흐… 흐흐…

이 어중이떠중이 쥐새끼 놈들이…! 감히 이 클럽의 보안에 흠집을 내?

클레어

그렇게 자부심을 가질 정도인가요?

정보 수집을 시작하고 1시간 이내에 클럽의 위치와 잠입 방법까지 모두 마련했습니다만.

경비대장

거짓말!

말도 안 되는 소리!!

몸 성히 내보냈다가는 여기저기 헛소리를 흘리고 다니겠군.

더 늦기 전에 깔끔히 처리해 주마!

클레어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나:

난 문제 없어.

클레어

스칼렛?

스칼렛

오오! 이제 슬슬 몸이 풀리는 것 같다!

클레어

다들 괜찮으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만…

나:

쓰러트려도 끝이 없네.

경비대장

겁도 없이 [딥 필드]에 들어올 생각을 할 만큼의 실력은 있는 것 같군…

하지만 계속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위치별 최소 인원 제외하고 전원 이곳으로 집합시켜라!

클레어

여기까지 왔으면 모조리 쓰러트려서라도 지나가야겠군요.

스칼렛

당연하지 않느냐!

각오를 다지며 다시 전투 준비를 하던 그때였다.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어디선가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비원 한 명이 가져온 이상한 모양의 기계 장치에서,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잠깐, 잠깐.

이곳은 NOA의 지성인들이 모여 고귀한 욕망을 추구하는 곳.

클럽 [딥 필드]입니다.

물론 폭력 또한 욕망의 한 종류이긴 합니다만…

규칙도, 목적도 없는 폭력은 저희 클럽에서 취급할 만큼 가치 있는 욕망은 아니죠.

여기 모인 분들은 모두 NOA의 저명한 신사와 숙녀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성인답게 일단 대화로 일을 풀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

누구야, 넌?

???

이런 실례를…!

소개가 늦었음을 사과드립니다.

제 이름은 [허블]

허블

이곳, 클럽 딥 필드의 오너이자 순수한 욕망의 탐구자… 로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클레어

[허블]… 들어본 적 있습니다.

NOA 뒷세계의 주인이라는 이야기를.

허블

하하하, 뒷세계의 주인이라니 당치도 않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숙녀분이 말씀하신 뒷세계에는 저 같은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괴물과 비밀들이 존재하고 있답니다.

전 그저 제가 가진 조그만 클럽을 운영하기 위해 약간의 관리를 할 뿐이죠.

경비대장

면목 없습니다, 허블님…!

허블

후후, 괜찮습니다.

이 세상에는 분명 당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경비대장

그, 그렇다면 용서를…

허블

하지만…

상대의 격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찮은 폭력을 휘두른 것은…

경비대장으로서는 조금 실망스럽긴 하군요.

경비대장

그, 그건!

허블

이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도록 하지요.

지금은 더 중요한 용건이 있으니까요.

경비대장

크윽…!

나:

그래서 대화로 풀어보자고…?

허블

그렇습니다.

대화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도구.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경계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 우리 사이에 놓인 오해의 구덩이를 메우기에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을 것 같군요.

제가 추측하기로…

여러분들은 아마 캔들 스퀘어의 벨 리스 님을 찾아 이곳에 오신 것 같습니다만…

스칼렛

역시! 무덤쟁이는 네가 납치한 게로구나!

허블

하하, 첫 번째 오해의 구덩이를 메울 수 있게 되어 기쁘군요.

비록 저희 측에서 벨 리스 님을 모셔 온 건 맞습니다만…

납치라니, 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저는 그분께 상호 간의 이득이 될 수 있는 제안을 드렸고…

벨 리스 님은 그 제안을 수락하신 것뿐이죠.

무엇보다 벨 리스 님은 캔들 스퀘어의 일원.

아무런 이득도 없이 그런 분께 위해를 가할 리가 있겠습니까?

나:

이득이 된다면 해칠 수도 있다는 거네.

허블

아아, 그쪽은…

그렇군요. 이번에 새로 부임하신 [여정 단장] 님이 아니신지요?

나:

나를 알아?

허블

물론이지요.

이곳 NOA의 설립자이자 신비에 싸인 대마녀.

[알리시아]님께서 직접 영입해 온 사람이 아닙니까?

단장님은 단장님 생각보다 훨씬 더 유명하다는 걸 자각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계획대로였다면 다음 달 즈음에 정식으로 초대장을 보내 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이렇게 부적절한 형태로 첫인사를 하게 되다니… 안타까울 뿐이군요.

하지만 제 진심을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저는 단장님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오래, 오래, 말이지요.

나:

…벨은 어디에 있지?

허블

벨 리스 님은… 클럽 안쪽의 비밀 공간에 계십니다.

물론!

어떠한 위협도 없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쉬고 계시지요.

현재로서는… 말입니다.

클레어

…왠지 협박하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허블

이런, 저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낮아 보이네요.

물론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해는 합니다만…

그래도 제 말은 진실입니다.

제가 드린 제안을 수락하기만 한다면 벨 리스 님은 안전하게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덤으로 아주 커다란 보상까지 받아서 말이지요.

그러니 여러분도 이만 진정하고 서로 이쯤에서 물러나는 건 어떨까요?

스칼렛

그 말을 어떻게 믿냐! 지금 당장 벨을 데려와라!

클레어

동감입니다. 제안을 거부하면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뜻이로군요.

허블

으음, 저로서는 많이 양보해 드렸다고 생각합니다만…

할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나:

그럼 어서…

허블

게임으로 결정하도록 하죠.

나:

게임? 무슨 소리야?

허블

여긴 게임이라는 룰을 통해 각자의 욕망을 추구하는 곳.

클럽 [딥 필드] 이니까요.

저와 여러분이 승부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승리한다면 바로 벨 리스님과 함께 이곳을 나가시면 됩니다.

하지만 제가 승리한다면…

흐음, 뭘로 할까요…?

아, 그래 이렇게 하기로 하죠.

벨 리스님을 대신해서 단장님이 이곳 클럽 딥 필드에 남아주시는 걸로.

스칼렛

뭐, 뭐냐, 그게!

클레어

그런 억지를…!

허블

억지라니요. 억울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제 영업장에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건 오히려 여러분들이 아니신가요?

나:

…왜 우리가 당신의 규칙에 맞춰줘야 하지?

허블

첫째로, 여러분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니까요.

제 초대를 받아 정식으로 방문하셨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습니다만…

지금 당신들은 분명 이 클럽의 룰을 위반하고 들어온 불청객입니다.

둘째로, 그것이 이곳의 룰이니까요.

원하는 것, 욕망하는 것은 게임을 통해 얻어간다.

그것이 클럽 딥 필드의 규칙입니다.

벨 리스님과 모종의 거래를 하고 싶은 건 저의 욕망.

즉시 벨 리스 님의 귀환을 요구하는 것은 귀하의 욕망.

상호간의 욕망이 충돌하는 상황이라면…

룰에 따라 결과를 정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겠습니까?

나:

내가 지면 언제까지 남아야 하지?

허블

글쎄요…

기분 탓일까, 기계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의 변조 톤이 더 기괴하게 변한 느낌이 들었다.

허블

저는 어릴 때부터 항상 관찰력이 뛰어났답니다.

바닥을 기어다니는 개미부터 저 하늘의 별들까지…

많은 것들을 관찰하고 그 본질을 깨닫기 위해 노력해 왔죠.

그리고 그것이 제 근원적인 욕망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모순적이게도 저는 더 이상 관찰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단장님은… 보물의 산과 같은 존재입니다.

단장님과 관련된 그 모든 소문에도 불구하고…

단장님은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더군요.

그러니 단장님에 대해서 제가 만족할 만큼 관찰할 때까지…

그때까지 남아주시면 좋겠군요.

…후후후후.

스토리 및 일러스트 © Studio B-Side. 비공식 열람용 아카이브입니다 — 문의나 요청은 사이트 소개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