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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R

타오르는 촛불과 토끼의 환영회 · 챕터 3

클럽 딥 필드

클레어

…

아무도 없습니다. 이제 나가죠.

스칼렛

후아! 흐아아…! 갑갑해서 죽는 줄 알았다…

이 위대한 용족 스칼렛님을 시궁쥐처럼 기어다니게 만들다니…!

이 무덤쟁이 녀석, 잡히기만 하면 용의 분노를 내려주겠다아!

클레어

스칼렛, 쉬잇!

스칼렛

으읍.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좁은 통로를 지나서 우리가 나온 곳은, 지하에 있다고 믿기 힘든 넓은 공간이었다.

사람보다 큰 키의 식물들로 꾸며진 정원 한가운데에, 물을 뿜는 커다란 분수 장식까지 있었다.

그 뒤로 펼쳐진 넓은 공간에 있는 것은…

스칼렛

…이게 카지노라는 거냐?

오오, 클레어, 저거는 뭐냐? 재밌어 보이는-

아, 아얏! 왜 발을 밟는 거냐?!

클레어

우린 여기 놀러 온 게 아닙니다! 목적을 잊지 마세요.

그리고, 아까 루나 님이 가르쳐준 것을 벌써 잊어버린 건 아니겠죠?

귀여운 몸짓!

스칼렛

바, 바니 바니…

클레어

…좋습니다.

에밀리는 분수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습니다.

일단 저기로 가서 기다리죠.

분수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에밀리는 오지 않았다.

머뭇머뭇 서 있다 보니 주변에서 수상하게 여기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나:

…어쩌지?

클레어

에밀리… 설마 우리와 다시 만나기로 한 걸…

…잊은 건 아니겠지요?

스칼렛

깨끗하게 까먹고 캔들 스퀘어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만…

클레어

…주변에서 우리를 보는 시선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아, 할 수 없지요.

일단 우리끼리만이라도 이동해서 벨 님을 찾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 있으면 결국은 사람들의 눈에 띌 것 같군요.

클레어의 지휘하에, 우리는 카지노 게임장을 지나 안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클레어

(스칼렛, 그만 좀 두리번거려요!)

(단장님, 좀 더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서셔야 합니다.)

나:

왜, 왠지 기가 죽어서…

클레어

(여유로운 느낌의 미소를 머금고, 발걸음은 부드럽게…!)

나:

…이, 이런 미소?

스칼렛

후하하핫! 단장, 얼굴이 바보 같다!

클레어

하아… 역시 스칼렛은 두고 왔어야 했나…

일단, 납치한 사람을 이런 곳에 두지는 않았겠죠.

조금 더 안쪽의 공간에 있을 겁니다. 저쪽으로 이동합시다.

클레어의 조언에 따라 자연스러운 표정과 발걸음을 유지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시를 구경하는 사람 같은 모습으로 조금씩 안쪽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

어이, 거기!

클레어

힉?!

스칼렛

헤엑?!

???

아까 얘기한 마티니는 대체 언제 가져다주는 거야?

고개를 돌려보니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우리를 향해 얘기하고 있었다.

중년 남자

주문한 지 10분도 더 지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늦는 거지?

두 명씩이나 그놈 옆에 붙어 있을 이유라도 있는 거냐?

거기 빨간 머리는 빨리 가서 내가 얘기한 거나 확인해 봐.

스칼렛

뭐라?!

클레어

(스칼렛! 바니걸, 바니걸!)

나:

(화내면 안 돼!)

스칼렛

…크윽!

중년 남자

…뭐라고 했지?

스칼렛

바, 바바바, 바바바바…

바니 바니~ 무슨… 일이… 신가요…? 헤, 헤헤…

중년 남자

나 참, 이런 곳에서 일하는 아가씨치고는 말귀가 어둡군.

마티니 말이다. 마티니! 주문한 지 10분이 넘었다고.

당장 가서 확인해!

스칼렛

마, 마티니? 마티니가 뭐냐? 그런 거 모르는데…

클레어

죄, 죄송하지만 저희는… 여기 있는 이 신사분을 안내하라는 오더를 받아서…

중년 남자

뭐어?

남자의 시선이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중년 남자

네놈은 누군데 바니걸이 2명이나 전속으로 붙어 있는 거야?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NOA의 고위 간부라도 되나?

위험하다. 꼼짝없이 의심받고 있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며 시비를 더할 기세다.

스칼렛

(어, 어떡하지, 단장?)

(이 인간, 왠지 모르게 끈질기다…!)

클레어

(…제가 대응하고, 여차하면 기절 시키겠습니다.)

나:

(…아냐, 내가 말해볼게.)

클레어

(단장님?)

클럽 내에서 바니걸은 손님들의 주문이나 요청을 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저 사람이 계속해서 요청을 하면 클레어나 스칼렛은 거절하기 어려울 게 뻔했다.

나:

(…오히려 강하게 나가보자.)

나:

(만약의 경우에는 좀 도와줘.)

클레어와 스칼렛을 잠시 뒤로 물러나게 하고, 중년 남자의 앞에 섰다.

중년 남자

네가 그렇게 대단하신 분인가? 응?

나:

…당연하지.

나:

이 몸은… 그 알리시아님과… 밥도 먹고… 인사도 하고…

나:

아무튼 그런 사이란 말이다!

밥은 먹은 적 없지만… 아무튼 심상치 않은 관계라는 건 사실이다.

없는 사실을 말하는 것도 아닌데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통할까?

어쩌면 [아, 그래? 우리 엄마가 알리시아다] 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는 철저한 회원제 클럽.

이 공간에 손님으로 있다는 것은 클럽으로부터 NOA의 상류 계급이라고 인증 받았다는 얘기다.

내가 하는 말을 100% 믿을 수는 없어도 무시할 수는 없다, 라는 계산이었다.

중년 남자

…

아, 알리시아님과… 밥을 먹는다고?

그, 그럴 수가… 정말 대단한 사람인가 보군.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중년 남자

하, 하지만 여보게 청년…

난 목이 너무 마르단 말일세.

자네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둘 중 한 명 정도는 날 도와줄 수도 있지 않나?

…어지간히 마티니가 간절한 모양이군.

하지만 둘 중 한 명이라도 보낼 수는 없다.

여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방법이 없다.

…끝까지 가볼 수밖에.

나:

미안하지만 그것도 곤란하군.

중년 남자

왜… 왜지?!

뒤로 한걸음 물러선 후-

스토리 일러스트
스토리 일러스트
스토리 일러스트

나는 클레어와 스칼렛을 양 옆으로 끌어안았다.

클레어

힛?!

스칼렛

히약?!

나:

이 둘은, 클럽 소속이 아니라…

나:

내 개인 바니걸이니까!

적막이 맴돈다.

중년 남성은 입을 크게 벌린 채로 말을 잇지 못하고 우릴 보고 있었다.

…저질러놓고 보니 급격한 후회가 밀려왔다.

역시 너무 나갔나? 개인 바니걸? 그런 게 가능한 건가?

말도 안 된다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클레어와 스칼렛은 끌어안긴 자세 그대로 뻣뻣이 굳은 채,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중년 남자

굉…

굉장하군… 자네…

굉장해…

먹혔구나-!!

나:

납득했다면 이만…

중년 남성은 혼이 빠져나간 듯한 느낌으로 의자에 깊게 파묻혔다.

그러고는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더 귀찮은 일이 생기기 전에 빠르게 돌아서는 순간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년 남자

내게도…

내게도 꿈이 있었는데…

맙소사… 그는 꿈을 이뤘군…

나:

빨리 가자…

스토리 및 일러스트 © Studio B-Side. 비공식 열람용 아카이브입니다 — 문의나 요청은 사이트 소개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